우원식 의원 이산가족 상봉기 <2부>

 이 글은 17, 19대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의 이산가족 상봉기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저서 '어머니의 강'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2부>


10월 27일

두루두루 알아보니 이산가족 상봉 때 생필품도 좋은 선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집 주변에 있는 마트에 가서 치약, 칫솔, 비누, 털장갑, 속내의 등 생필품을 샀습니다.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북측의 큰누님 성격이 미국에 있는 관혜 누님의 까다롭달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에 가까울 만큼 철저한 성격과 닮았다고 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물건을 사 나가면서 어느덧 누님이 곁에 계신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정혜 누님이 이 물건을 좋아하실까, 어떨까? 저 혼자 생각이면서도 누님과 상의하는 것 같은 마음이 자꾸 들더군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물건은 자꾸 늘어 갑니다. 30kg 보따리 두 개라는데 이미 생필품만으로도 한 보따리가 넘어 버렸습니다.

내일은 옷가지와 학용품을 살 예정입니다.


10월 29일 아침

어젯밤에 선물 짐을 모두 꾸렸습니다.

겨울용 파카, 스웨터, 목도리, 털조끼, 내의, 스타킹 등등……. 지구당 여성위원회에 나가니 회원들이 누님 드리라고 양말, 내의 등을 준비해 주었고, 후배 종붕이 자기 회사의 화장품을, 조기축구회 후배 회원인 갑선이 역시 자기 회사의 양말과 털모자 등 여러 가지 챙겨 왔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이번에 북한의 누님을 만나는 일을 준비하며 이산가족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우리 민족사의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낍니다. 상봉이 확정된 후 여러 행사를 다니면서 이 사실을 알리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합니다.

적극적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에서도, 동네 주민이 모이는 산길걷기대회에서도, 교회 예배 중에도, 진보적 토론모임인 노원포럼에서도, 가을 소풍 가는 노인정 회원들의 버스 안에서도, 대진고등학교 개교 기념 행사장에서도……. 모두가 하나같습니다.

보수나 진보나, 노인이나 애들이나, 아줌마나 아저씨나 모두가 하나같이 기뻐하고 환영하고 부럽다 하고 잘 다녀오라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만 남북문제에 접근을 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이번에 열린 남북 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가 또 결렬되었다는 소식은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총 12만 8,232명 중에 우리 아버지처럼 이미 명을 달리한 분들이 4만 4,940명에 이르고, 6・25전쟁이 터진 지 60년이 지난 상황인지라 그나마 생존자 8만 8,417명 중에 77%가 70대 이상에 이르고 있다니, 이제 이산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무슨 이유로 상봉 정례화 회담이 결렬되는가!

남아도는 쌀을 지원하는 문제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문제가 왜 그리 어려운 문제란 말인가!


가슴 설레는 상봉을 위해 떠나는 날 아침, 반갑고 기쁘면서도 한편 우울해지는 것은 제가 과민한 탓은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상봉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수많은 나’가 있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지요.

어쨌든 준비한 선물 가방을 차에다 싣고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일산으로 떠나야겠습니다.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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