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0819] 협조한다더니… 문 걸어잠근 英 옥시 본사


태도 돌변에…특위, 방문 취소

옥시 기자회견 없이 비공개 요구

“청문회 참석자도 추후 논의” 발뺌

피해자 측 “한국을 우습게 본다”

우 위원장 “책임자 출석 계속 추진”


22일 예정됐던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의 영국 방문이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옥시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가 현장조사에 대해 비공개를 요구하며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29일 예정된 국회 청문회에 본사 직원이 참석할지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19일 특위에 따르면 전날 레킷벤키저 측은 특위에 “라케시 카푸어 레킷벤키저 대표가 특위를 만날 수 있지만, 논의 내용은 모두 비공개로 한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다. 한국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역시 기자회견 없이 특위 방문단을 상대로만 비공식적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특위 관계자는 “15일 전후만 해도 현장조사는 비공개로 하되, 조사가 끝나면 카푸어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하고 특위와 공동 브리핑을 하기로 조율했으나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고 말했다.

레킷벤키저 측은 특위에 보낸 서한에서 ‘영국 정부의 요청사항’이라며 비공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우원식 특위 위원장은 “본사의 변명일뿐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며 “영국 정부의 요청이 사실이라면 한국 기업이 영국에서 수천명을 다치게 만들고 수백명을 죽였을 때 영국 국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우 위원장을 포함해 여야 의원 5명과 옥시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 6명은 22일 오후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다. 레킷벤키저 측의 비협조로 인해 출발을 불과 사흘 앞두고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에 따라 특위 여야 간사는 영국 방문의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19일 오전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이번 영국 방문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본사 직원을 청문회에 소환해 옥시 한국법인의 유해제품 판매와 증거 은폐 등에 대한 본사의 개입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특위의 영국 방문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레킷벤키저 측은 “청문회에 참석할 책임자 명단을 미리 보내겠다”며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 “영국에 와서 (참석자) 명단을 논의하자”고 말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우 위원장은 “책임자를 청문회에 참석시키는 일은 계속 추진할 예정”이라며 “응하지 않는다면 청문회에서 각종 증거자료를 토대로 본사 개입을 집중 추궁하겠다”고 경고했다. 

영국행이 무산되면서 가장 허탈한 사람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다. 지난해와 올해 5월에 이어 이번이 3번째 영국 방문이었던 김덕종(40)씨는 “카푸어 대표를 만나 ‘끝 없이 계속 와서 당신들과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지만 물거품이 됐다. 영국 검찰 고발 등 준비했던 다른 활동들도 기약이 없어졌다”고 좌절했다. 김씨는 “영국 본사가 비공개를 고집해도 특위가 현지에 가서 싸우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 대표는 “옥시 본사가 대한민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국회는 다국적기업의 부도덕한 행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만들고, 이들이 국내 시장에서 돈을 벌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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