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보고인 이곳도 '이명박'을 피하진 못했다

[2013년 영산강 도보순례 기행문] 둘째 날

 

생태계 보고인 이곳도 '이명박'을 피하진 못했다 

도보순례 둘째 날(12일), 서울은 호우주의보가 예고됐고 임진강 방류 소식이 들렸지만 이곳 전남 담양의 날씨는 화창했습니다. 오늘은 NLL 관련 대통령 기록물 열람과 진주의료원 관련 국정조사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전면 보이콧으로 무산됐습니다. 어쩌면 우는 놈 뺨 때려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담양댐에서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용산교까지 27km가 '영산강, 생명의 강으로' 도보순례단의 둘째 날 순례 구간이었습니다.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담양댐은 4대강 사업의 일환인 둑 높이기 공사가 한창입니다. 담양댐은 영산강 4대 댐 중에서 가장 높이가 높고 폭은 좁은 댐입니다. 상대적으로 깎아지른 협곡 같은 느낌을 줍니다. 둑 높이기 공사가 끝나면 아마도 그 위압감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수십조 원 쏟아부은 4대강, 왜 그늘은 허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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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공사 중인 담양댐

 

담양댐은 공사가 진행돼 아래로 물을 거의 흘려보내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용소의 맑은 물은 담양댐 바로 밑 금성천에 얼마 가닿지 못한 셈입니다. 드디어 담양 시내를 관통하는 첫머리 금성천에 도착했습니다. 첫날부터 줄곧 도로를 따라 걸었던 터라 금성천변길을 만난 순례단 일행은 설렜습니다. 그러나 금성천을 물줄기는 가늘었고 잡풀이 무성했습니다. 우리는 금성천 옆 자전거길과 그보다 바깥의 뚝방길을 번갈아 걸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자랑, 자전거길은 자전거용이 아닌 우레탄 재질로 닦여 있었습니다. 우레탄은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면서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다 일어나거나 깨지기 쉽습니다. 그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곳곳에 우레탄을 걷어낸 구간도 많았습니다. 더 문제는 자전거길이라 보행을 고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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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도로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급조된 시설

 

남부지방 전역이 폭염인 오늘 같은 날, 우레탄 혹은 시멘트로 길로 광낸 그늘도 없는 자전거길을 걷는 것은 여간 곤혹이 아니었습니다. 금성천뿐만 아니라 오늘 27km 일정 중 자전거길로 이동하는 거의 모든 구간에서 날 것 그대로의 햇살을 뚫고 가야 했습니다. 아마도 4대강 구간에 깔려 있는 대부분의 자전거길이 그럴 것입니다.

왜 수십조 원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에 그늘은 허락되지 않았을까요? 속도전이 지상과제였던 이명박 정부가 보기에 든든한 그늘을 이루기에 넉넉한 시간이 필요한 나무그늘을 만드는 것은 한가한 짓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문자 그대로 작렬하는 태양을 이기고 가야 했던 둘째 날, 그러나 기쁨이 더 많았습니다. 수많은 드라마·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길은 거추장스러운 아스팔트를 걷어내 우리에게 두 발로 걷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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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노력이 없었다면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은 사람이 아닌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될 뻔했다.

 

조선 시대 가사문학의 산실, 면앙정·식영정을 품은 죽녹원을 지나 담양을 대표하는 명소인 관방제림(官防堤林) 길을 걸을 때는 넉넉한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많은 담양주민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관방제는 담양시내를 흐르는 담양천의 저지대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선조 1648년 만들어진 제방입니다. 그 관방제 위에 나무를 심은 것은 철종 때인 1854년입니다. 당시 이곳 부사가 연인원 3만 명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담양의 대역사(?)였습니다. 관방제림을 거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 그대로 담양 5일장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강과 사람이 의지한 오랜 세월을 확인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기쁨은 영산강을 살리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확인한 것과 담양습지를 만난 것입니다. 관방제림을 지나 광주로 향하는 아스팔트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 제내지, 즉 제방과 강 사이의 땅에 대규모 창포 밭을 목격했습니다. 영산강 지킴이로 활동 중인 분에게 여쭤보니 담양군이 자연정화를 위해 심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창포는 자연정화 기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날 밤 토론회 때, 미나리꽝을 마을 도랑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심게 해 농가 소득과 도랑 정화에 활용하자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 유사한 사례를 본 것입니다. 열악한 재정 속에서도 강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담양군 관계 기관 여러분의 노력에 감탄했습니다.

 

영산강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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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되고 나온 물은 이곳 영산강변 창포 밭을 거쳐 한 번 더 자연정화된 이후 영산강으로 방류된다.

여정은 어느덧 담양과 광주의 경계 지점, 담양 끄트머리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곳이 아마 오늘 일정의 백미인 담양하천습지입니다. 담양하천습지는 영산강 상류의 조류 집단서식지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2004년 하천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면적만 30만 평에 이릅니다. 배후에 너무나도 근사한 대숲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대숲 사이 길을 지나 하중도 바로 앞 나무 데크에서 담양습지의 가치에 대한 설명을 자연해설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여름 철새인 백로의 일종인 황로·왜가리 등의 조류부터 심지어 삵과 수달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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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의 하천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담양습지 전경

 

영산강은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생태계의 보고였습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 담양의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맵기로 유명한 대숲 모기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발걸음을 쉬이 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곳도 4대강 사업을 비켜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곳도 준설이 있었습니다. 관방제부터 여기까지 본래 강보다 수위가 낮아 범람이 잦은 담양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선 일정 동안 한 번도 못봤던 하중도 역시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입니다. 자연을 지키면서 슬기롭게 이용하는 것, 그 경계에 대한 고민을 또다시 하게 됩니다.

강의 자연 생태계를 어려움에 빠트리는 주요 원인은 사람입니다. 반대로 훼손된 자연생태계가 복원되는 데, 살아나는 데 사람의 역할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사람의 길로 만들고, 담양습지를 지켜낸 것은 강 옆에 살며 관방제림을 400여 년간 지켜왔듯 지금도 묵묵히 영산강을 지키고 가꿔온 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틀의 여정을 마치고 담양을 벗어나 내일부터는 광주·나주에 이르는 일정에 접어듭니다. 더 이상 관방제림도, 담양습지도 없습니다. 사전답사를 진행한 결과, 오늘 걸었던 그늘 없는 아스팔트 자전거길이 걸어야 할 땅의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강을 맑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또 기다려집니다. 또 가겠습니다. 

 

* 본 기사는 7월 16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8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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