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7.12)_ “단식 사흘째, 머릿속엔 온통 설렁탕… 첫 고비가 왔다”

 [단식의 정치학] “단식 사흘째, 머릿속엔 온통 설렁탕… 첫 고비가 왔다”

김용익·우원식·윤후덕 의원 체험기 

 
“점심 때 먹은 설렁탕이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닌다. 구수한 냄새에 침이 꼴칵꼴칵 넘어가고, 시큼한 깍두기 국물은 뇌리를 파고든다. 한점 남겨둔 고기를 왜 먹지 않았나, 국물을 끝까지 마셔버릴걸 온종일 후회가 된다.”

 

사흘 단식 후 고비가 찾아오는 시간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마지막 식사라고 한다. 지난달 27일 ‘을(乙)지키기’ 법안 국회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던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설렁탕이 마지막 끼니였다. 윤 의원과 함께 단식투쟁했던 같은 당 우원식 의원에게는 배고픔보다 더한 치통이 찾아왔다. 우 의원은 “어금니가 좋지 않았는데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사흘째가 되면 저항력이 떨어져 온 몸의 백혈구가 들고 일어나 병균을 밀어내는 전쟁을 벌인다고 하더라”고 했다. 숙변도 골치다. 단식하면 장운동이 멎는 셈인데 장 속에는 하루 분량의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는 터라 배변이 중요하다. 지난 4월 초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발하며 단식했던 민주당 김용익 의원은 “최민희 박홍근 의원 등 우리 당 ‘단식 선배’들이 찾아와 변비약을 쥐어주고 갔다”고 떠올렸다.

 

이 모든 고비를 넘긴 닷새째 몸이 가볍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음식 생각도 덜하다. 윤 의원은 “단식할 기회가 또 있겠나. 슬슬 ‘기록 경신’에 대한 속물적 욕망이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단식이 길어지면 단백질 공급이 안 돼 장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의사이기도 한 김 의원은 “물과 소금으로 몸속 전해질 균형만 맞춰주면 상당 기간 단식도 가능하지만 사소한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의원은 성대 근육이 상해 한동안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세 의원은 몸무게가 5∼6㎏가량 빠졌다.

 

우·윤 의원은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교도소에서 단식을 ‘밥 먹듯’ 하다가 30년 만에 단식투쟁을 했다. 우·윤 의원은 6일, 김 의원은 7일간 국회 내 본회의장 계단 앞에서 굶었다. 왜 단식을 택했을까. 요즘엔 건강을 위해 단식하는 사람도 많아 1주일 정도 하는 건 멋쩍기도 하고, ‘툭 하면 단식이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우 의원은 “다급한 상황에선 국회의원인 나조차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고 했다. 김 의원도 절박한 심정에 생애 첫 단식에 나섰다. 우·윤 의원이 단식 중인 지난 1일 대리점주 고통을 해결해줄 ‘CU방지법’이 가까스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하자는 대로 했으니 그만 굶어요.” 우 의원은 “미흡하지만 한 걸음 내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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