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을 우원식] 우원식 미디어 - "한겨례 뉴스" 끊이지 않는 의문사…유가협, 진상규명 팔걷다 / 박정기


[노원을 우원식] 우원식 미디어 - 
               "한겨례 뉴스" 끊이지 않는 의문사…유가협, 진상규명 팔걷다 / 박정기


1988년 8월 어느날 연세대생 고정희의 어머니 나화순이 유가협을 찾아왔다. 그는 회원들에게 아들이 의문사당한 일을 설명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연을 듣고 박정기가 회원들에게 말했다.
“어머니 말을 들어보니 타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에 재학중인 고정희는 13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라며 청와대 등 여러 곳에 투서를 보낸 일로 88년 3월3일 경찰에 연행되었다. 연행 뒤 경찰은 응암동 시립정신병원과 강남성모병원에 그를 강제입원시켰다. 강남성모병원 정신병동에 감금된 고정희는 5월13일 병원 9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 사건은 많은 의문사들처럼 자살로 처리되었다. 나화순은 구타 등으로 아들을 사망케 한 뒤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이 현장을 보전하지 않고, 추락한 곳에 혈흔이 없는 점 등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기와 회원들은 나화순과 함께 강남성모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병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쳤다. “고정희를 살려내라”, “병원은 진상을 밝혀라!” 병원 쪽과 몸싸움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몸싸움이 끝나자 유가협 회원들은 연좌시위를 벌이고, ‘고정희 사건 진상 규명하라’는 글씨를 병원 건물 벽에 붙였다. 연좌시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천주교의 책임이 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이래선 수가 안 보입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곳이 천주교이니 성당에 가서 책임을 물읍시다.” 잠시 뒤 박영진의 아버지 박창호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박정기를 불렀다. 박정기가 수화기를 들자 병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원장입니다. 고정희씨 문제가 좀 복잡합니다. 우리 병원과 저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주세요.”  사건이 커질 것에 대한 우려가 느껴졌다. 박정기가 대답했다. “택도 없는 소리 마시오. 이만 끊겠심더.” 
유가협 회원들은 회의를 열어 농성장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서 회원들은 김수환 추기경 면담을 요구했다. 농성중인 회원들의 소식을 듣고 평민당의 인권위원 우원식과 김거성 목사가 찾아와 대책을 논의했다. 분신 등의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현장을 찾아와 유가협과 함께하는 이들이었다.  추기경의 면담 거부로 유가협 회원들은 명동성당 주임신부 숙소 앞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벌였다. 이틀에 걸친 농성은 뚜렷한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 병원에서 환자에대한 보호가 충분치 못한 점을 인정했지만 진상 규명을 위해선 경찰 관계자 등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했다. 명동성당 농성은 두 달 뒤 시작된 의문사 진상규명 농성으로 이어졌다. 

나화순은 이때 유가협에 가입하고 135일 동안 지속된 기독교회관 농성에 참여했다. 고정희 사건은 2000년 10월 설립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조사가 이뤄졌다. 위원회는 고정희가 정신병원을 탈출하려다 추락한 사고사로 결론을 내렸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나화순은 현재까지 조사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88년 8월12일 창립 3년째에 접어든 유가협은 정기총회에서 이소선 회장과 박정기 부회장을 선출했다. 회장 1인 체제였던 유가협은 이때부터 부회장을 선출했다. 건강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소선은 박정기와 함께하길 원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서 정미경이 간사로 선임되었다.2주년 정기총회의 결정사항 중 한 가지는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앞으로 유가협 활동을 특징짓는 것이었다. 김성수, 우종원의 어머니가 “의문사 문제를 유가협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박정기는 유가협에 가입한 뒤 의문사 문제를 알게 되었다. 의문사 가족들은 저마다 홀로 진상 규명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망 원인이 밝혀진 박종철과 달리 의문사당한 이들은 죽음의 원인이 미궁이었다. 열사의 아버지로 추모제나 집회 등에 초대받는 자신의 처지와 달랐다. 회의 자리에서 박정기가 일어나 말했다.  우원식 우원식
“종철이도 의문사로 남겨질 뻔했심니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이 의문사로 처리하겠다는 말임을  오늘 깨달았어요. 이게 의문사가 아니고 뭡니껴? 유가족의 심정을 잘은 몰라도 그때 내 심정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껴? 내는 아직도 저놈들이 밝히지 않은 진실을 알고 싶은데 성수, 종원이 어머니는 오죽하겠습니까?
의문사 문제는 내 문제고 유가협의 문제입니다.”  우원식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0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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