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08.27)_“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내년부터 정년 연장이 시행되고, 향후 3~4년 동안 베이비붐세대의 아들딸이 대거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청년들의 고용절벽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저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이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습니다.”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노동개혁’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성세대가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임금피크제를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청년 취업 증가?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특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를 가리키는 말.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회사를 일정 기간 이상 다닌 노동자의 급여가 후배보다 낮아지게 된다. 기업이 이를 통해 절감한 비용으로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후에도 8월 12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안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임금을 깎겠다”고 밝히는 등 임금피크제 시행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은 상당수 국민이 공유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실업률은 9.4%로, 1999년 7월(11.5%) 이래 가장 높다. 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나쁘다는 걸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많다. 통계청 자료의 경우 조사 대상이 아르바이트만 해도 취업자로 분류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이를 보완해 ‘주당 18시간 미만 노동자’ 등을 ‘실질적 실업자’로 포함해 집계한 5월 서울시 청년(15~29세)의 ‘실질실업률’은 31.8%에 이른다.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인 셈이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바로 청년 취업이 증가하느냐 하는 점이다. 재계는 ‘그렇다’는 의견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4월 국내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이를 통해 발생하는 재원으로 2016~2019년 18만2300여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유관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도 임금피크제 도입 시 기업 인건비 부담이 26조 원 절감돼, 29세 이하 정규직 31만 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가 이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우리나라의 실질 정년을 감안하지 않은 연구라는 이유에서다. 경총과 한국경제연구원은 노동자가 60세까지 일하는 것을 전제로 임금피크제의 이익을 계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는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게 현실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38세 퇴직, 45세 정년, 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단어가 유행할 만큼 조기 퇴직이 확산된 결과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 펴낸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근로생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평균 53세(남성 55세, 여성 51세)였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우리나라 노동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2014년 기준 49세(남성 52세, 여성 48세)에 불과했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은 일반적인 임금피크제 설계에서 노동자 임금이 삭감 단계에 접어들기 전 연령이다.


“노사협의 사안에 왜 정부가 뛰어드나”

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의 적용을 받는 베이비붐세대 일자리는 주로 전통적 제조업에 해당하는 반면, 청년 신규 채용이 요구되는 일자리는 서비스업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아 두 세대의 일자리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임금피크제의 장점은 사용자가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임금 부담이 적은 고령의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도록 유인하는 데 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 교수는 “기업이 젊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산전후 휴가, 자녀교육비, 주거보조금 등 각종 복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노동자를 계속 쓰면 이런 비용 없이 양질의 노동력을 운용할 수 있지 않나. 그것이 임금피크제의 실제 효과”라고 밝혔다. 즉 중·장년세대가 청년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임금 삭감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임금피크제라는 뜻이다. 단 정년 연장으로 중·장년세대의 경제 활동이 안정화되고, 그것이 소비를 늘려 경제가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청년 채용 증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각종 연구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이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로부터 받아 공개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에 따른 채용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의 채용률이 도입한 기관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업의 정년실태와 퇴직관리에 대한 연구’ 등에서도 정년 연장과 청년실업률 완화 사이에 직접적인 인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당초 박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내놓은 공약집에도 임금피크제는 ‘고용 안정과 일자리 지키기’ 방안에 포함됐다.


이하 보도 생략

보도 전체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0&aid=000285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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