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을 따라 소통의 길을 열자


[흐르는 강을 따라 소통의 길을 열자]

우원식 맑은물포럼 공동대표

지난 여름 낙동강 천 삼백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매년 강의 환경, 상태도 살펴보고, 강주변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강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4년째입니다. 2005년 섬진강(220㎞), 2006년 금강(400㎞), 2007한강(340㎞), 올해 낙동강(520㎞)을 걸었습니다.

무엇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이동수단인 걷기는, 강과 그 주변의 자연과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빠름만을 추구하는 자동차의 속도가 아니라 두 발로 느리게 걸을 때에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온 몸을 통해 느리게 이루어지는 공감을 통해 강과 지역의 속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강을 따라 걸으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강은 그 지역 사람들의 독특한 문화와 성정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섬진강은 자연 그대로의 질박한 느낌이라고 하면, 금강은 백제의 문화와 역사가 흐르는 이름 그대로, 비단내(錦江)였습니다. 북한강은 분단과 개발의 아픔으로 뒤척이는 자연과 인공이 겹쳐있는 강이었습니다. 낙동강은 상류의 빼어난 자연환경, 중류지역의 찬란한 역사문화와 더불어 하류지역의 오염과 갈등이 하나로 흐르는 그야말로 큰 강이었습니다.

이처럼 강은 단순히 우리들에게 단순한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이 아닙니다. 강은 그 주변의 자연적, 지리적 환경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 사회적 환경도 함께 품어 안고 흐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강도 그 이름에 걸맞는 유구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강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사회적 의미와 함께 한강이 겪고 있는 다양한 모순과 갈등의 현황을 보면서, 이 시대 한강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역사의 강, 민족의 강

한강은 구석기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영욕과 애환을 함께 나누어 온 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강을 부르는데 있어 ''민족의 젖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 않나 봅니다.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우리 민족이 살았다는 증거들은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를 비롯해서 강남구 역삼동, 파주군 금파리, 연천군 전곡리 등 하류지역과 여주군 단현리, 가평군 청평리, 양주군 검터, 양평군 양근리 등 한강 중류, 충북 제원군 사기리, 단양군 도담리 금굴, 등 남한강 유역, 그리고 양구군 상무룡리 등 북한강 유역까지 수많은 구석기 유물들의 발굴을 통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강은 한반도의 중심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강으로써, 수량이 풍부하고 지류가 잘 발달되어 유역주변은 고대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입니다.

한강은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하는 남한강과 금강산 옥밭봉(玉田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총길이는 약 514km에 이릅니다. 길이로서는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에 이어 네 번째이고, 유역면적은 26,018㎢로서 이 부분에서 한강은 최대의 넓이를 가진 강입니다.

그만큼 역사에서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았던 강입니다. 그래서 한강은 시대에 따른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서의 기록에 따른 것만 정리하더라도 삼국시대 초기에는 우리나라의 허리에 걸쳐 있어 마치 허리띠를 두른 것 같다고 하여 ''대수(帶水)''라고 불렀고, 고구려에서는 ''아리수(阿利水)''라 했으며 백제는 ''욱리하(郁里河)''라 했으며, 신라는 상류를 ''이하(泥河)''로,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습니다.

한편 삼국사기 신라편에 보면 왕봉현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군 행주 지역인데 한강을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한산이란 한산주이며 지금의 경기도 광주를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또 독(瀆)이란 바다로 직접 들어가는 강이란 뜻인데 곧 북독이란 신라의 북쪽에 위치한 큰 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려때에는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 내리는 긴 강이란 뜻으로 ''열수''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아 ''사평도(沙平도)''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 이전에 백제가 동진과 교통하여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이름을 중국식으로 고쳐서 ''한수(漢水)''라 불렀으며, 그 뒤부터 옛이름은 차츰 없어지고 마침내 한수 또는 한강이라고만 불리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강은 본래 우리말의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로 ''한''은 크다, 넓다, 길다는 의미이며, ''가람''은 강의 고어로 크고 넓은 강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경강(京江)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른 한강의 이름>

시대 구분

국가 및 지역

이름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

아리수

백제

욱리하

신라

이하, 왕봉하

삼국시대 후기

신라

한산하, 북독

백제

한수

고려시대

열수, 사평도, 사리진

조선시대

한남동 남쪽 지역

한강

팔당댐 부근

도미진

광장동 앞

광진

송파 부근

삼전도

뚝섬,옥수동 앞

두모포, 동호

동작동 앞

동호, 동작강

노량진 앞

노들강, 노강

용산 앞

용호, 용산강

마포 앞

삼개, 마호

서강 앞

서호, 서강

양평동 부근

양화도

가양동 앞

공암진

고양군 행주 부근

왕봉하

김포 북쪽

조강

한강은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강''은 도성 남쪽 10리 지점 곧 목멱산(남산) 남쪽(한남동)이라 하고 있습니다. 곧 한강은 한남동 남쪽 지역의 냇물 이름이지 모든 구간에 걸친 명칭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기록에 의하면 팔당댐 부근은 도미진, 광장동 앞을 광진, 송파부근을 삼전도, 뚝섬과 옥수동 앞을 두모포 또는 동호, 동작동 앞을 동호 또는 동작강, 노량진 앞을 노들강 또는 노강, 용산 앞을 용호 또는 용산강, 마포 앞을 삼개 또는 마호, 서강 앞을 서호 또는 서강, 양평동 부근을 양화도, 가양동 앞을 공암진, 고양군 행주 부근은 왕봉하, 김포 북쪽은 조강(祖江)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역사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항상 그 시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속의 한강은 치열한 전쟁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강이 지정학적으로 중심적인 위치에 있고, 또 규모면에서도 유역 면적이 가장 넓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에 따라 한강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운선을 통한 세미의 운송을 비롯하여 뗏목 운반, 경강 상인의 상업활동, 얼음의 채취 보관, 진이나 나루터를 이용한 교통 및 군사적 이용, 어류 및 생태계의 활용 등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우리 생명의 원천인 식수원, 그리고 농업용수, 공업용수, 골재채취원, 한강종합개발사업에 이르기까지 그 이용 범위는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해졌습니다.

소통과 만남의 강

한강은 기본적으로 강이 가진 산과 육지가 만나고 상․하류의 사람과 문화가 만나는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강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한강이 넓은 유역을 흘러온 큰 물줄기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예부터 가장 큰 도시였던 서울을 지나쳐 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만남은 남한강 상류의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정선 아우라지(두 가지 물이 한데 모여 어우러지는 나루라는 뜻)라는 지명에서부터 시작되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그리고 한강 본류와 지천이 만나는 진과 나루터를 거쳐 한강 최하류의 조강포(祖江浦)에 이르기까지 한강 전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경제와 문화의 교류는 조운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조운 제도란 조세로 징수한 미곡, 포백(베와 비단) 등을 수상 운송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조운이 제도화 된 것은 고려초 성종 때(992년)였습니다. 조선시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부터 전국의 세곡이 조운을 통하여 한강으로 집결하게 되었습니다. 또 서울에 거주하는 지주층이 지방 농장에서 기둔 소작료도 대부분 선박으로 운반함으로써 한강은 경제성이 높은 수로가 되었습니다. 이 때 조운선은 30척을 ''일정(一錠)''으로 하여 함께 운항하였고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대형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조선의 조운제도는 경국대전의 반포로 매듭지어졌는데, 이에 의하면 조선의 조창은 9개이고 그 가운데 3개가 한강 연안에 있었습니다. 곧 충주의 가흥창, 원주의 흥원창, 춘천의 소양강창이었습니다. 이 들 조창에서는 충청도와 강원도의 세곡을 수납하여 한강을 통하여 서울의 경창으로 수송하였습니다. 경상도의 세곡이 한강을 이용하여 운반되면서부터 한강의 조운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서울 지역의 한강인 경강은 전국의 주요한 물산과 물자를 따라온 사람, 그리고 각 지역의 문화가 모이는 곳이 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조창, 15세기>

조창명

수곡 구역

조선수

가흥창(충주)

경상도 제읍과 충청도 지역

51척

흥원창(원주)

강원도 지역(평창, 영월 등)

소양강창(춘천)

강원도 지역(홍천, 양구 등)


한강의 최상류 첫 나루터는 남한강의 정선 아우라지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우라지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나루터라는 뜻입니다. 두 물줄기는 구절리(강원도 정선)에서 흘러오는 송천과 임계(강원도 태백)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입니다. 남한강은 이 곳에 이르러 비로소 강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서울에서 사용되는 원목들을 이동시키기 위한 뗏목이 출발하였습니다.

아우라지는 한강의 첫 나루터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선 아라리''입니다. 정선 아리랑으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지역사람들은 아직도 아라리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합니다. 남녀의 이별과 슬픔, 만남과 기쁨, 우국충정을 담은 많은 아라리들이 불리워졌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곡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아우라지에는 처녀상이 세워지고 이러한 정선 아라리의 애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한강의 발원지로 이야기되어지던 오대산 우통수의 전설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영월 동강의 어라연의 아름다움과 단종의 슬프디 슬픈 사연이 담긴 청령포와 낙화암, 장릉을 지나며 뒤척여 정선으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북한강은 물줄기는 하나이지만 분단으로 나뉘어져 더 이상 하나의 물줄기가 아닙니다. 화천의 평화의 댐에 위치한 비목공원은 이러한 분단의 아픔을 더욱 짙게 합니다. 북한강 최상류의 마을들을 지나쳐 문학과 호반의 도시로 알려진 춘천을 지나 아직도 그 정신이 꼿꼿이 살아있는 듯한 정약용 생가와 수종사를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만나게 됩니다.

이렇듯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의 많은 지역을 거쳐 흘러들어온 이야기과 문화들은 서울에 이르러 새로운 복합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옛 송파나루터에서 행해지던 송파 산대놀이와 같은 새로운 문화들입니다. 약 200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송파 산대놀이정월대보름․오․추석 등의 명절에 연중행사로 놀아 왔는데 단오에는 1주일씩 계속되기도 하여, 당시 한강을 통한 사람과 문화의 교류의 크기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주로 행해지던 내용은 승려의 타락, 가족관계의 갈등 등으로 세속에 대한 풍자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한강 본 줄기에 접어들어서서는 우리나라의 치욕의 역사를 함께했던 남한산성, 우리나라 3대 대첩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의 역사를 담고 있는 행주산성, 두 형제가 황금덩어리를 얻고도 우애를 위해 황금을 버렸다는 전설을 간직한 공암진 나루(양천구), 어린 평양 기생의 그리움을 담은 조강포 애기봉을 거쳐, 바다를 앞에 둔 한강의 최하류 유도(머머리섬, 홍수에 떠내려오던 것들이 머물르는 섬)에 이르게 됩니다. 유도를 거쳐 강화 앞바다와 만나면서 한강은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수많은 애환과 이야기들을 승화시키면서 그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한강의 유적과 이야기>

■ 오대산 우통수, 서대 수정암 : 신라의 왕자 보천(보질도)과 효명이 이 곳의 물로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공양하고 득도하고 창건한 암자

■ 영월 청령포 : 단종이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낮추어져 유배된 곳으로 육지속의 섬

■ 영월 낙화암 : 1457년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시녀와 종인들이 강물에 몸을 던져 충절을 바친 벼랑

■ 어라연 : 영월 거운리와 문산리 사이에 자리한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절승지, 일명 삼선암

■ 남양주 수종사(水鍾寺) : 세조가 마치 종소리처럼 들리는 물소리를 따라가 찾은 바위굴에서 나한상을 발견하고 지은 사찰. 물(水)과 종(鍾)을 합쳐서 수종사라 이름지음

■ 공암진 나루 : 옛날 양천에서 행주로 건너가던 나루터. 두 형제가 길에서 주운 황금덩어리를 형제의 우애를 헤칠까봐 강물에 버렸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짐

■ 조강포 애기봉 : 평양의 사랑스런 기생이 한강의 물산이 모이던 조강포에 왔다 병들어 고향을 그리워하며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한강 하구의 봉우리

근대화와 개발로 뒤척이는 강

한강에 근대적인 치수와 이수의 개념이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1908년 서울 뚝섬에 “경성수도양수공장”이라는 정수장이 건설되면서 근대적 상수도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근대적 치수개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25년 대홍수 이후부터입니다.

한강에 큰 홍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큰 피해를 낸 것은 1925년(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의 제방이 무너져 용산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고, 남대문 앞까지 물이 차 모든 전차 운행이 중단되었고, 통신과 우편이 두절되었으며 수많은 인명사고와 가옥 유실을 불러왔습니다. 을축년 대홍수를 겪고 나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등 지류에 대한 대대적인 제방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한강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개발과 파괴, 오염으로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의 자연과 사람을 철저히 착취하기 위한 ‘식민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강의 개발과 파괴는 1960년대 들어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주체만 바뀐 형태로 한강의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58년 시작된 청계천 복개 공사가 1960년대 초에 마무리되면서 전국적으로 복개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1970년 시작된 잠실 개발이라는 공유수면 매립 공사와 댐건설은 한강의 모습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잠실 개발은 현재의 잠실 올림픽 경기장이 위치한 잠실동과 신천동에 대한 육지화 공사를 말합니다. 이 지역은 한강의 가운데 있는 부리도라 불리우는 하중도(河中島)인 섬이었던 곳인데, 북쪽의 강줄기를 넓게 하고 남쪽의 하천을 폐쇄하는 매립을 통하여 육지화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쪽을 흐르던 한강은 현재의 석촌호수만 남기고 모두 매립되었습니다.

1957년 괴산댐을 시작으로 1965년 춘천댐과 의암댐, 1968년에는 청평댐과 화천댐, 1973년에는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이야기되어지는 소양강댐이 완공되었고, 1974년에 현재의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한강은 더 이상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댐으로 단절된 강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강의 댐공사는 80년대에도 충주댐(1985년), 평화의 댐(1989년), 횡성댐(1991)으로 이어져 남한강과 북한강 모든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각종 댐으로 나뉘어진 호수의 연속이 된 한강은 만남과 소통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개발중심의 근대화와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는 한강을 빠르게 오염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한강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한강물이 너무 더러워져서 1979년 한강하류의 노량진, 영등포, 김포, 선유에 있는 취수장은 폐쇄되기에 이릅니다.

오염이 심해지면서 한강은 시민의 삶으로부터도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1962년에는 제1한강교 부근 수영금지, 1969년 한남동 나루터 폐쇄, 1973년 보트놀이 금지와 뚝섬 나루터 폐쇄, 1981년 뚝섬 수영장 폐쇄가 이루어져 한강은 더 이상 시민들의 휴식과 놀이공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한강종합개발은 1982년 착공되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 중동 특수의 쇠퇴와 소비사회화를 바탕으로 한강종합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이를 계기로 한강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강종합개발은 근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신음하던 한강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시작된 공사였지만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실질적인 복원공사는 아니었고,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한 정비사업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당시 암사동에서 행주대교 구간의 저수로 정비와 고수부지, 올림픽대로가 건설되고 분리 하수관로 공사가 진행되어 한강 수질오염을 줄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밖에 잠실과 신곡에 수위 유지를 위한 수중보가 건설되었습니다. 이렇게 시멘트 둑으로 물가를 막고 하천을 직선화하며 둔치를 운동장형 공원이나 주차장으로 개조하고 자동차 전용 강변도로를 건설하면서 한강의 본래 모습은 사라지고, 생물 서식지 교란으로 한강 생태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갈등과 단절의 강에서 소통의 강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통한 경제발전과정 속에서 한강이 소통과 만남의 강에서 어떻게 분단과 단절의 강으로 변해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리만큼 급속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한강의 모습과 가치도 그만큼 크게 변화시켜놓았습니다.

이렇게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근현대를 거치면서 한강의 본래의 모습을 잃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지역과 지역의 단절이라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한강의 관리에서도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습니다.

1) 역사와의 소통

우리의 한강은 지금 물리적, 사회적, 생태적 단절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한강을 민족의 젖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흐드러지고 굽이치며 사람과 자연, 지역을 연결하는 소통의 강으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풍 속에서 잊어버렸거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우리들 역사와 마주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들 본연의 길과 한강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모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역사와 한강 그리고 우리와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 남․북의 소통

두 번째로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의 단절을 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한강은, 특히 북한강은 강은 하나이지만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전히 하나로 흐르지 못하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강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철조망으로 단절된 한강은 임남댐(금강산댐)으로 또 다시 단절되어 있습니다. 임남댐 건설의 부풀려진 피해의식으로 남측에는 평화의 댐이라는 또 하나의 댐이 건설되었습니다. 임남댐으로 인한 한강의 진짜 문제는 홍수가 아니라 흐르는 강의 유량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전력이 부족한 북측은 임남댐의 물을 동해쪽으로 유역변경하여 전력발전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존에 화천댐으로 유입되던 유량이 약 13억톤정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임남댐 건설 전에 비해 약 40%의 물이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물의 양이 줄어들면 북한강의 생태계와 수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강의 유량을 유지하여 한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면서, 북측의 전력난의 일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부처를 넘어선 협력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서로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한강의 충분한 유량을 확보하기 위한 남과 북의 이해와 협력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한강은 예전의 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남북 환경협력은 ‘걸어서 금강산까지’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도시와 농촌의 소통

세 번째로는 한강유역의 도시와 농촌간의 소통입니다.

한강의 경우는 점오염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비점오염원은 현재의 40% 수준에서 2015년에는 70%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점오염원으로 인한 문제 중에 한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흙탕물 문제입니다.

9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탁수문제는 점점 심각해져, 남측 북한강 최상류인 오작교 GOP에서부터 시작된 흙탕물이 평화의댐, 파로호를 거쳐,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을 거쳐 양평 두물머리까지 지속되다가 남한강을 만나서야 비로소 희석이 되는 상황입니다. 2006년에는 최고 탁도가 예년의 예년의 4~25배인 328 NTU에 달했고, 탁수발생기간이 239일에 이르는 장기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수질오염은 정수장의 정수비용을 증가시키고, 분해가 쉽지않은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수도권 식수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강의 탁수문제의 주된 원인은 집중호우로 인한 상류 지역의 산사태 및 하천범람에 의한 토사유실, 무분별한 고랭지밭 경작으로 인한 토사유출, 도로공사, 하천공사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탁수 발생에 있습니다.

사실 고랭지 채소의 경작은 농업하는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고랭지 채소 경작이 늘어나는 이유는 도시 사람들의 계절을 가리지 않는 질좋은 채소에 대한 요구로 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고랭지 채소를 먹기만 하지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형편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소통을 통해서 채소밭의 효율적인 경작과 토사유출을 막기 위한 통합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탁수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한 것입니다.

흙탕물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도시와 농촌 모두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서로 긴밀히 협력하고 함께 미래의 전망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4) 한강 상․하류의 소통

네 번째는 2400만 수도권의 식수원인 팔당을 중심으로 나누어지는 한강 상․하류 지역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강을 둘러싼 갈등 중에 심각한 것은 지역과 지역의 갈등입니다. 1998년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오염총량제’ 도입은 한강 중상류의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주민과 전문가, 환경단체 등이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하류지역(수도권) 주민들의 ‘물이용부담금제도’ 도입을 이끌어내면서 이해갈등이 해소되었습니다. 수도권 주민들의 물이용부담금을 모아서 ‘수계관리기금’을 조성하여 수도권의 상수원보호로 인한 규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중상류지역의 지역발전과 수질개선을 위한 기초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강의 경우, 경기도와 팔당주변의 5개 시군(가평, 양평, 여주, 하남, 남양주)의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와 맞물려 총량제 의무화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총량제 의무화와 규제개선을 연계하지 않기로 환경부와 합의해놓고(팔당호수질정책협의회) 2006년에 이를 번복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원도는 수도권 규제완화와 총량제 의무화가 연계되면 강원도 발전을 저해한다는 입장으로 총량제 의무화에 부정적입니다.

상하류의 공영정신에 의한 유역관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오염총량제와 수계관리기금이 지자체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으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수계관리기금도 당초 도입목적과 취지와 다르게 지역간 형평성 차원에서 지원되는 재원으로만 인식되거나 규제 피해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강조되어 수질개선에 대한 책임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개선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수계관리기금 사업별, 지역별 지원내역, ‘99~’07>

사업별 지원

수질개선 기반조성

주민지원사업

수질개선사업

기타

총액

1조 4,253억

(62.4%)

5,667억

(24.8%)

2,912억

(12.8%)

2조 2,832억

(100%)

지역별 지원

서울특별시

강원도

경기도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2.5%

18%

55%

9%

비용 부담

46%

39%

12%

(추정치. 단위/원)

자기 지역의 발전만을 우선시하는 근대적 방식으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갈등과 단절만을 심화시킬 뿐입니다. 유역전체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진심으로 소통할 때만이 상생의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한강법 도입시기에 이러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5) 한강 문제해결을 위한 물관리 일원화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뒷받침하기 위한 물관리 정책과 제도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한강이 가지고 있는 물관리의 난맥상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댐과 보로 인한 생태계 단절>

한강은 수도권의 특성상 많은 댐과 보로 인해 단절되어 있습니다. 남한강에는 괴산, 충주, 도암, 횡성댐이 있고, 북한강에는 북한의 임남댐을 비롯하여, 평화의댐, 화천댐, 소양강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으로 곳곳이 댐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 지천들은 수많은 보로 인해 물의 흐름과 하천생태계가 끊겨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약 18,000여개의 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강원도의 경우는 약 3,800개에 가까운 보를 가지고 있으며, 더욱이 매년 신설되는 보의 수는 상당수에 이르고 있어 신설보의 증가와 더불어 노후화되고 기능을 상실하여 폐기시켜야할 보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댐이나 보를 포함하여 어도가 설치된 경우는 거의 드물어 강원도의 하천은 물은 흐르되, 약 3,800개의 연못으로 단절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보의 설치와 관리는 지자체와 지방국토관리청, 농업기반공사 소관이다 보니, 환경부는 한강수계의 보에 대한 현황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조사된 자료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때문에 기능을 상실한 보의 철거와 생태계 단절을 막기 위한 시급한 연구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하천관리 분산의 문제>

우리나라의 경우 하천만 물리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천을 관리하는 일도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습니다. 현행 하천은 하천법에 의하여 국가하천, 지방 1․2급 하천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국가하천은 국토해양부가 관리청이고, 지방 1․2급 하천은 광역시도가 관리하고, 소하천은 소하천정비법에 의해 시장군수 및 구청장이 관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하천 관리 체계>

구분

합계

국가하천

지방1급하천

지방2급하천

소하천

갯수

26,550개

61개

52개

3,773개

22,664개

연장길이

65,597 km

2,981 km

1,151 km

25,650 km

35,815 km

관리청

건설교통부

시도지사

시장․군수

관련법

하천법

소하천정비법

한강의 경우는 국가하천 15개, 지방 1급 12개, 지방 2급하천 678개 등 총 705개의 하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리주체는 5개 광역지자체, 41개 시군구, 한강유역환경청, 원주지방환경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한 수량과 댐은 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가 관리하고, 수질은 환경부가 관리하도록 별도로 분리되어 있고, 강속에 사는 생물은 ‘내수면어업법’으로 국토해양부 소관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물줄기는 하나지만, 물의 흐름은 댐으로 나뉘어져 있고 물관리는 각 관리청으로 나뉘어져 있어 분산과 비효율, 중복 투자 등으로 인해 온전한 하천의 관리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정부의 물관리 정책형성기관과 주요 업무 현황>

구분

주요 업무 내용

관련계획

수자원관리

수자원개발

관계법령

국토해양부

수자원

장기종합계획

- 직할하천 관리

- 홍수관리

- 저수관리

- 광역상수도

- 다목적댐 및

하구둑(일부)

- 내수면어업 관리

- 다목적댐 건설

- 광역상수도 건설

- 내륙수운,운하

- 하천법

- 댐건설 및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 지하수법

- 공유수면관리법

- 수자원공사법

- 내수면어업법

- 수산업법

농림수산식품부

농어촌

용수계획

- 관개용수

- 하구둑(농업용)

- 관개댐 건설

- 간척지 담수호

- 지하수 개발

(농업용)

- 농어촌정비법

- 농어촌발전특별법

- 농어업재해대책법

지식경제부

전원개발계획

- 발전용댐 관리

(소수력 포함)

- 양수발전,

소수력 댐 건설

- 전원개발촉진법

행정안전부

방재기본계획

- 지방하천

- 풍수해

- 수원지역관리

- 상하수도시설

관리

- 내수면어업

- 지방상수도 건설

- 지방생공용수

댐 건설

- 소하천정비

- 온천법

- 자연재해대책법

- 소하천정비법

환경부

수질보전계획

- 수질관리

- 하천정화사업

- 음용수관리

- 하수종말처리장

- 공단폐수처리

- 4대강수계관리

- 상수도 설치,관리

- 하수도 설치,관리

- 환경기초시설

- 환경정책기본법

- 수질환경보전법

- 수도법

- 하수도법

- 먹는물관리법

- 4대강특별법

<무분별한 소하천 정비의 문제>

하천 정비에 관한 것을 살펴보면, 국토해양부 친환경 하천정비사업과 환경부의 자연형 하천정화사업 , 행정안전부의 소하천 정비가 각 부처의 소관법률에 따라 관리되고 있습니다. 국토해양부와 환경부의 경우 2000년부터 2007년 5월까지 동일 하천에서 별도의 부처협의 없이 시행한 사업이 150건에 달했습니다.

또한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가중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인 직강화와 콘크리트로 제방과 강바닥을 만드는 소하천 정비사업은 2004년가지 1조가 넘는 돈이 투여되었고, 2006년 이후에도 총 10조 4천억원이 투여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타 부처의 사업이기 때문에 소하천 정비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상수도관리 이원화의 문제>

우리들이 먹는 물인 상수도의 경우 광역상수도의 경우는 국토해양부의 관리하에 수자원공사가 담당을 하고 있고, 지방상수도의 경우 환경부의 인허가를 통해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상수도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가 이처럼 왜곡된 형태로 이원화하여 관리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의 경우 댐관리 권한이 수자원공사에 있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관리체계 이원화는 부처간 상호 협의조정이 쉽지 않고, 장래 용수수요에 대한 과다예측으로 수요량보다 과다한 시설투자로 인한 예산낭비를 낳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절반이 가동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광역상수도는 48.4%, 지방상수도는 54.7%의 평균가동율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누적 과잉투자액만도 광역상수도 1조 5천억원, 지방상수도 2조 5천억원, 총 4조원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2005년 현재, 광역상수도는 총 사업비 2조 5천억원에 14개가 건설중이고, 계획중인 광역상수도의 경우만도 총 사업비 1조 9천억원에 16개 이르고 있습니다.

<‘03년 상수도 가동율 현황, 천톤/일 >

구 분

총계

(정수기준)

지방상수도

광역상수도(공업용수도 제외)

소계

정수

원수

침전수

시설용량

28,462

23,777

11,496

4,685

6,434

377

생 산 량

15,670

13,024

5,562

2,646

2,654

187

평균가동율(%)

55.0

54.7

48.4

56.5

41.2

49.6

< 과잉투자 비용추정

구 분

광역상수도

지방상수도

산출근거

시설용량(천톤/일)

11,496

23,777

-

투 자 액(억원)

43,685

90,353

톤당 38만원

(‘00년 도화eng)

과잉투자액(억원)

(평균액)

13,804~15,989

(14,897)

22,769~27,285

(25,027)

적정가동율

80~85%

이러한 상수도 이원화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대도시 중심의 투자와 먹는 물의 지역간 불균형을 초래하게 합니다. 대도시에 집중된 투자는 특․광역시의 경우 상수도 보급률이 98.5%에 이르지만 농어촌지역의 520만 정도의 인구는 아직도 간이상수도나 마을상수도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대도시 지역의 광역상수도 건설은 전액 국고로 이루어지지만 재정이 열악한 농어촌의 지방상수도는 융자위주의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광역상수도 중심의 개발은 지자체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지역의 물환경 악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수도 관리 일원화와 함께, 댐건설을 통한 공급위주의 현행 물관리 정책이 아닌 수요관리와 철저한 수질관리를 통한 상수도 서비스 품질 향상으로 상수도 정책의 중심을 옮겨가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분산으로 비효율과 예산낭비를 불러오는 현재의 물관리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중앙정부차원의 물관리 일원화가 부처이기주의로 인해 쉽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부터 통합적인 유역중심의 물관리의 모범들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강을 중심으로 한강 유역의 수계관리위원회와 지역의 하천관리위원회의 통합을 통해 한강유역관리위원회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입니다.

소통의 길을 따라 함께 걷자

이러한 소통을 만들어가는데 있어 걷기와 길은 좋은 방법과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강을 따라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길을 통해 소통의 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모여서 하나의 한강을 위한 새로운 소통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강이 흐름으로써 그 만남의 기능을 한다면, 하나의 강이지만 이미 행정구역과 댐으로, 남북으로, 도시와 농촌으로, 상류와 하류로 나뉘어진 강을 따라 걷는 길은 이러한 기능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의 노력입니다. 옛 사람들은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욕심으로 나누어진 지금의 강은 사람들의 반성과 정직한 땀흘림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이 열리고 강과 하나가 된 느낌을 가져본 사람들은 아름다운 강변의 풍경과 길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어느 샌가 그 길 위에 다시 서 있는 자신을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최근 폭발적인 걷기 문화의 확산을 지켜보면, 걷기의 속도에 맞는 자연을 가진 지역은 또 하나의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걷기는 강과 그 지역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속도를 가졌기 때문에 지역의 문화와 역사, 생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관심은 애정의 출발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공부하게 되고,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출발점입니다.




참고문헌

감사원, “공공기관 갈등조정 관리실태”, 2007

안홍규, 우효섭, “하천 생태통로 복원기술 동향”, 환경기술정보센터, 2005

우원식, “섬진강, 은어의 꿈”, 2006

유현민, “한강 답사기행”, 버들미디어, 2004

이형석․김주환 저, “한강”, 대원사, 1990

진용선, “동강”, 대원사, 2000

홍성태 외, “한국의 근대화와 물”, 한울아카데미, 2006

환경부, “물환경관리 기본계획”,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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