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의장단에게 보내는 편지

존경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김세균 교수님,
그리고 교수협의회에 참여하고 계신 교수 여러분께 드립니다.

저는 지난 4월 15일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되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우원식입니다.

저는 민교협이 지난 87년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결성되어 지난 80년대와 90년대, 대학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민교협의 그런 노력이 사회 각 분야의 민주주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한 열린우리당의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저로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민교협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 보면서 ‘역시 민교협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에 이렇게 글을 보내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민교협 내부의 일과 관련해 이런 글을 보내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되어 양해를 청하며, 혹시라도 민교협 내부의 자율적 논의와 판단에 개입한다는 느낌을 드리게 된다면 그것은 절대 저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에 있으면서 저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우리 나라 최대 재벌 기업인 삼성이 가혹할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 아래에서 노동자를 혹사시키고 또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을 매우 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삼성SDI에서는 법정 근로시간을 훨씬 넘어 과로사하는 노동자도 생겼기에 특별 근로감독을 요청하였으며, 노동부 장관은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특별 근로감독의 최종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노동부는 900건이 넘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지금도 조사가 진행 중이며 곧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삼성의 관리능력은 대단합니다.
일례로 언론에서는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번 삼성SDI 특별조사 내용도 그렇습니다.
노동부가 생긴 이래 본부에서 개별 기업에 대해 이번과 같이 특별조사팀을 구성하여 조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부에서 한 개별 기업에 대해 그렇게 많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적발한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언론이 철저히 외면한 적도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 재벌, 특히 삼성의 힘은 아직도 막강합니다.


그리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원칙’에 대해서 과거 어떤 정부, 어떤 노동부 장관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회에 오기 전에 여러 가지 사회 운동의 경험과 사회생활의 경험을 통해 노동부에서 삼성에 대해 특별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노동부에서는 그렇게 했습니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금 제게 들려오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볼 때, 삼성 내부의 당혹감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노동부가 재벌 기업에 대해 그것도 ‘무노조 경영’을 천명하고 있는 삼성에 대해 강력하게 조사 했고, 언론이 외면했더라도 그 성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민교협 소속 회원입니다.
제가 국정감사장에서 삼성SDI 문제를 제기하여 특별 근로감독을 요청했을 때 김대환 장관의 얼굴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삼성 SDI 한 노동자의 장시간 근로시간 현황을 밝혔을 때, 김대환 장관은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 근로감독을 요청하자 이를 단호하고 결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그 때 역시 민교협 소속의 김대환 장관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한 부처를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그 같은 결정이 매우 어려운 일인 것 또한 분명하기에 장관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환 장관은 한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서 개인적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 최대의 재벌 기업인 삼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계 언론사와 인터뷰 할 때, 반드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삼성SDI 조사는 김대환 장관이기에 가능했다고 말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저의 국정감사 경험과 김대환 장관에 대해 이야기 하는지 교수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얼마 전 보도를 통해 민교협에서 김대환 장관에게 경고조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징계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원에 대한 경고나 그 밖의 조치는 단체의 고유권한입니다.
어떤 단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단체 밖의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아는 민교협의 창립정신과 지금까지 활동 내용으로 볼 때, 김대환 장관이 민교협의 창립 목적과 활동에 반하는, 민교협의 개혁정신을 손상시킨 회원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저는 김대환 장관의 개혁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김대환 장관이 삼성SDI에 대해 특별조사를 실시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누가 물으면 저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삼성에 대한 이번 조사는 모든 언론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외면하는 이 상황 자체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개혁방향과 정도를 가늠하는 주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길지 않은 글을 통해 자세한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제가 국회에 들어와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우리 나라 상황에서 무엇을 개혁성의 기준으로 볼 것인가 할 때, 재벌 개혁에 대한 동의 여부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 실시는 그래도 참여정부의 노동부에서 개혁성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재벌 개혁을 위해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겠지만, 아직까지 최소한 노동부에서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정된 지면에 자세한 말씀을 모두 드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민교협에서 김대환 장관에게 지적하고 있는 내용은 저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법안과 공무원노조법안에 대한 판단 때문이겠지요.
저는 지금은 비록 국가보안법 폐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긴 상태이지만, 비정규직 법안과 공무원노조법안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곧 환경노동위원회로 다시 돌아가 그 법안을 심의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비정규직 법안과 공무원노조법안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다만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서 저의 소견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철폐냐, 보호냐 했을 때 저는 ‘보호’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은 우리의 선택 여부를 떠나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철폐’가 아닌 ‘보호’를 택했다고 개혁성을 의심받는 것은 가혹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보호’의 내용일 것입니다.
지금 법안은 ‘보호’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철폐가 아닌 한, 보호의 수준과 내용이 비정규직 고용체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차별은 분명히 없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최소한 지금 정부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주무부처 장관에게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개인에게 문제를 삼으려면 개인적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를 제1차적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 정부 각 부처의 의견과 상황을 종합해야 하는 위치라면 거기서 개인적 차원의 의지 여부를 문제로 삼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여러 가지 논란은 있겠지만, 비정규직 법안은 개인적 철학과 의지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총체라고 봅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별개로 하더라도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왜 법안을 만들어 논란을 만드는가’하는 경영계의 소리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보호 법안을 마련하여 차별금지 내용이 확정된다면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고 보는 시각과, 비정규직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보호 법안의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 법안이 시장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100%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법안은 보호의 내용을 어떻게 확대하고 확보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할 대상이지, 특정인의 개혁성을 판단할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제가 삼성SDI 문제를 제기할 때 김대환 장관을 보면서 민교협을 떠올렸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는 만족할 수 없는 비정규직 법안을 보면서 민교협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역시 민교협이구나 생각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민교협 소속인데 왜 그렇지?’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민교협의 고민 내용을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를 개인적 의지의 문제로 치환한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질의와 답변내용을 모두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상임위를 통한 질의과정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이 산업정책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는 김대환 장관의 확고한 생각을 확인했습니다.
주무부처의 장관으로서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고 권리를 지키려는 의지가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민교협 출신 김대환 장관을 믿습니다.


저는 지난 국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했습니다.
발언을 기다리는 동안 동료의원을 간첩 운운하는 어떤 민변 출신 의원의 발언을 들었습니다. 민변 출신으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변의 정신을 저버리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뒤 민변 안에서 민변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 의원을 제명하겠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지금 민교협에서 대학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위한 민교협의 목적에 반한다는 이유로 김대환 장관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혀 다른 위치에 있고 또 성격과 내용이 전혀 다른 두 상황이 동일한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상황이 비교되는 것 자체가 슬픕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서 이렇게 교수님에게 간곡하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개혁이라는 어려운 길을 김대환 장관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개혁을 위해 함께 갈 사람은 너무나 적을 것입니다.

짧은 소견이지만 부디 제 의견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 12. 26 오후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한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장에서

댓글

Designed by CMSFactory, Modified by Wonwo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