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가 다른 남과 북이 함께 ‘상품’을 만들었다

저는 지난 15일 개성에 다녀왔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첫 ‘상품’이 생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품이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으로 출하된다는 것입니다.
안 가볼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주의의 반대말은 자본주의일 뿐이며, 자본주의 체제라 해도 독재를 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 체제라 해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 때는 그랬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적 체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두 체제의 본질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상품’이고 ‘시장’이었습니다. 더욱이 남과 북은 그런 체제의 차이에다가 참혹한 전쟁까지 겪게 되어 갈등과 대립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과 북이 함께 ‘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체제와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함께 시장에 내놓을 ‘상품’을 만든 것입니다.
지구상에 남은 거의 유일한 사회주의 나라에서 자본주의 시장에 출하할 상품을 생산했습니다. 그것도 자본주의 국가인 남측의 자본과 기술에다가 사회주의 국가인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이 결합되어서 말입니다.


그동안 남과 북은 운동 경기에서 단일팀도 구성해봤고 올림픽에서는 공동입장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봄에는 중국 어선의 침범을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협조체제도 갖추어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개성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출하한 것은 지금까지의 그런 남북 합작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남북 합작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합작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라는 정서에 바탕을 둔 감성적 합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냄비는 사회주의적 생산양식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합작입니다. 그렇게 다른 두 체제가 서로 협조하여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개성에 가서 저는 문익환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1989년, 아직은 이른 새봄에 민족 역사의 새봄을 이끌고자 ‘늦봄’ 문익환 목사님은 북한을 방문하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평양 봉수교회에서 부활적 예배를 보실 때, ‘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을 푸르게 한다는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북한을 방문하시기 전에 ‘이미 통일은 다 됐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지만 않는다면 통일은 다 됐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통일은 벌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개성의 하늘을 볼 때, 문익환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봐라, 내가 통일은 다 됐다고 했잖니····’

이번에 제가 가서 봤던 냄비는 통일을 향한 힘찬 출발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 속에서 이루어진 통일이 아주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남과 북 우리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것을 서로 인정하면서 그 둘을 합쳐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남측의 자본이 시장에서 노동력을 자유롭게 구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번 생산은 100% 자본주의적 생산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측은 필요한 근로자의 1.5배를 선발하여 자본가(북쪽에서 말하는 기업인)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업인이 개성 공단에서 자신이 필요한 노동력을 시장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 놓은 셈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개성 공단에서 ‘상품’을 생산해서 ‘시장’에 출하한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아마도 먼 훗날 남북이 통일되어서 남북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새로 쓸 때, 2004년 12월 15일은 매우 의미가 큰 상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그 상징적인 날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다져 놓은 초석을 참여정부에서 하나씩 그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이미 북은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할 협력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순간에도 간첩 암약 운운하면서 불법적으로 국회를 점거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막고자 하는 한나라 당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기뻐할 때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슬퍼할 때 슬퍼하지 못하고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도 못합니다. 저는 개성 공단에서 만든 냄비를 보면서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과 북이 하나되어 상품을 만드는 현실에서 동료 의원을 간첩으로 모는 이 불행한 상황을 슬퍼합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상황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하는 한나라 당에 대해 분노합니다.


하지만, 개성 공단을 다녀온 어제는 그저 기뻐할 따름이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마 문익환 목사님도 어제는 하늘 나라에서 무척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2004. 12. 16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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