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원이 참여하여 재·보궐 선거 참패에 대한 평가를 조직합시다

1. 국민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참패했습니다. 더 이상 어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입니다. 낮은 투표율을 탓할 수도 없을 정도의 참패고, 재·보궐 선거에서는 항상 졌지만 대선에서는 이겼다는 자기변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참패입니다. 6개 지역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하여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 등 총 23개 선거구에서 모두 졌다면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 열린우리당이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상태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재·보궐 선거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분석이 후보 등록 파동이나 선거 전술의 문제, 혹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의 실패 등 기능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머문다면 우리는 이번 재·보궐 선거 패배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우리를 뒤돌아 봐야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 출발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우리는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가?”

2. 창당정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은 한마디로 ‘개혁’입니다. 개혁을 철저히 하겠다는 의지로 소수당을 감수하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당은 그 의지를 제대로 실현할 틈도 없이 대통령 탄핵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우리에게 힘을 달라고.

그때 우리가 국민에게 호소한 것은 자연인 노무현의 대통령직 유지가 아니라, 개혁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지켜달라는 것이었고, 대통령과 함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열린우리당에게 힘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은 우리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탄핵 후폭풍의 결과라고 해도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했습니다.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서 탄핵은 수구와 개혁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국민은 탄핵을 계기로 수구와 개혁에서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우리의 선택은 명백했습니다. 국민이 주신 힘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구와 개혁의 대치전선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우리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적 상대를 대상으로 어떻게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관철시킬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이전에 대화와 타협의 상대일 뿐인 ‘한나라당에 맞춰서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의 정체성을 유지·강화하여 외연을 확대해야 할 지도부가 원내전략을 위해 개혁의 내용과 수준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기도 했습니다.

3. 평가 부재의 상황, 더 이상 이렇게 갈 수는 없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개혁정당인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240시간 연속 의총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2004년을 넘겼고 당 지도부는 사퇴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당 지도부의 사퇴는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외면하여 개혁을 추진하려다 실패했기 때문인가,’ 한마디로 ‘지도부의 사퇴는 개혁 후퇴에 대한 책임인가, 아닌가.’ 그리고 ‘240시간 연속의총은 정당했는가? 아니면 일부의 지적처럼 과격 상업주의에 불과한 것인가.’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된 평가를 못했습니다. 평가가 부재한 상황에서 마련한 대안은 치명적인 논리적 한계를 갖게 됩니다. 객관적 평가가 없는 대안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반영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평가를 피하면서 대의원대회를 치뤘고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합니다. 재·보궐선거 패배는 그저 한 선거의 패배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참여정부의 정책이 철저히 국민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현실을 강조한다면 더더욱 이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현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당에서도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단을 구성하여 패인을 분석하여 대안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이미 다양한 평가와 대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천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개혁의 정체성 미흡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항마 주재를 지적하면서 정부에 나가 있는 두 장관의 복귀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지적은 한편으로 타당성이 있지만, 열린우리당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선택도 정확한 문제 진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단 과정에 모든 당원이 참여할 때만이 거기서 나온 대안도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오늘 중앙위원회에서 평가단 구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이 기간당원제를 채택하는 한, 기간당원이 평가에 참여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입니다.

기간당원이 참여하는 평가를 오늘 중앙위원회에 제안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하지 않았습니다. 기간 당원이 평가에 참여하는 과정은 중앙위원회에서 의결하여 지시할 사항이 아니라, 기간당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4. 당원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기간 당원의 평가를 조직합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기간당원이 평가과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마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처럼 재·보선 패배의 원인과 당의 발전 전망 등 모든 것들을 평당원이 직접 참여하여 논의하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이 평가 작업은 재·보궐 선거 결과를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여 원인과 대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겠지만, 열린우리당의 미래 역시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당 정체성의 문제와 같은 근본적인 것부터 정부에 파견된 당 중진의 복귀와 같은 구체적인 방안까지 모두 논의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 각 지역별 당원협의회는 모든 문제를 다 놓고 평당원이 참여하는 치열한 토론을 거치는 평가를 조직해 봅시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교회의 보수적인 면을 완전 탈피하여 과감하게 제도와 의식, 교육 등에 관한 재해석과 개혁의 자세를 드러내 보여 가톨릭 교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처럼, 우리 역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재보선의 평가와, 그에 따른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대해 폭넓은 토론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우리는 지금 그런 절박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3년이 걸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처럼 무한정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10월에 예정된 재·보궐 선거,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우리 앞에 있기 때문에 평가는 늦어도 여름까지 끝내야 합니다. 5월을 전당원이 참여하는 평가기간으로 정해서 각 당원협의회 차원에서 평가를 조직하고 그 결과를 중앙당에 제출합시다.

각 당원협의회에서 이루어진 평가 결과는 중앙당 차원의 평가단에서 작성될 평가서에 반영될 수도 있고, 혹은 각 당원협의회에서 제출한 평가 결과와 중앙당 평가단의 평가 결과를 중앙위원회에서 함께 검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당은 지역별 당원협의회를 통해 당의 문제에 대해 집중 토론하여 그 결과를 중앙당에서 수렴하는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어제 한 기간 당원 자격으로 내가 속한 노원구 당원협의회장에게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를 조직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내 제안이 당원협의회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노원구에서는 가장 먼저 평당원 중심의 재·보궐 선거 평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대로 공개될 것으로 믿습니다.

다른 당원협의회에도 이런 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기간당원 여러분, 그리고 당원협의회 회장 여러분. 지역별 당원협의회를 중심으로 한국정당사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합시다. 그리하여 100년 정당을 지향하는 열린우리당의 힘을 만천하에 과시하면서 다가올 선거 승리를 준비합시다.

2005년 5월3일
노원구 기간당원 국회의원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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