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은 비정규직 ‘양산’이 아니라 ‘보호’ 법안이다

비정규직 법안은 비정규직 ‘양산’이 아니라 ‘보호’ 법안이다.

2006년이 다가기 전에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많은 금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하거나 비정규직의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올리기로 노사가 합의하였다. 우리은행은 노사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으며, 상당수 금용기관은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으로 격차를 점차 줄여나기로 합의하였다.

물론 많은 금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혹은 처우개선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해결의 전부는 아니다. 여전히 대다수의 비정규직은 차별과 고용불안 속에서 더 나은 새해를 기대하면서 2006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우여곡절 끝에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킨 올해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금융기관 노사 합의가 결코 한 겨울에 잠시 한번 스쳐지나가는 훈풍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기관의 이 같은 합의는 비정규직 법안이 일부의 지적처럼 비정규직 양산 법안이 아니라 실제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안이라는 내용증명일 수 있다.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 어떤 신문은 사설을 통해 2년이라는 기간제한은 기업의 속성으로 볼 때 “비정규직들은 2년 만에 자동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법안을 비판했다. 그런데 우리은행 노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합의한 바로 다음날 사설에서는 “숙달된 비정규직을 비정규직 법안에 따라 2년 마다 바꾸는 것도 기업으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두 가지 내용은 모두 맞다. 법안에 따라 2년 만에 자동으로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고, 또 기업이 그렇게 할 경우 숙달된 비정규직을 2년 마다 바꿔야 하는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될 당시에는 비정규직이 2년 뒤에 재계약을 하지 못해 일자리를 잃는 것만 지적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은행 합의 다음날 지적한 것처럼 비정규직을 2년 마다 바꿔야 할 경우, 반드시 감수해야 할 기업의 손실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우리은행의 선택은 위 신문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비정규직을 2년 마다 바꿔야 하는 손실’ 대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택한 것이다. 법안의 내용에 따라.


한편 비정규직 법안은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시정 절차와 시정하지 않을 경우 처벌 조항이 있다. 비정규직을 철폐 혹은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즉 고용의 유연성은 보장하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는 없도록 했다.

우리은행 노사 합의 뒤에 또 다른 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우리 은행 노사 합의는) 엄밀하게 말하면 ‘반쪽짜리 정규직화’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의 의미를 깎아내릴 일은 아니다. 비정규직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고용 안정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한꺼번에 이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을 고려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지만 이 신문은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된 다음날 사설에서는 “기업들이 계약직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기간만 늘려준 꼴이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법안을 비판했다.


최근 금융기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혹은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금융기관의 노사 합의가, ‘2년 이상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없고 차별금지를 명문화’한 법안이 없어도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위에서 인용한 두 신문의 사설도 지적했듯이, 비정규직 법안은 기업에게 계속 비정규직을 고용할 경우에는 ‘숙달된 비정규직을 2년 마다 바꾸는 손실’을 감수하도록 한 법안이며,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한꺼번에 이루는 건 쉽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앞서 지적처럼 이번 정규직화가 고용안정에도 불구하고 ‘반쪽짜리 정규직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군별 임금 차별에서 출발하는 정규직화는 ‘반쪽짜리 정규직화’의 문제는 아니다. 직군별 임금 격차의 문제는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양하고 심각하게 드러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새로운 과제다.

직군제를 통한 임금격차, 혹은 직무에 따른 임금격차는 고용 불안이라는 조건에서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한 사용자의 고용형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비정규직 양산 등 민생의제에 대해 속수무책을 넘어 놓는 수마다 악책이 되는 속수악책의 국회(민주노동당, ‘원내브리핑’)”라는 비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국회는 나름대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든 것이다. 이제 국회는 비정규직 법안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인 보호법안이 되도록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찾아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

본격적으로 법안이 시행되면서 예상과 달리 비정규직이 확대될 수도 있고, 차별시정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다.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에 앞서 금융기관의 합의를 본보기로 삼아서 앞으로 법안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법의 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 전체가 차별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 12. 28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위원장 우원식

댓글

Designed by CMSFactory, Modified by Wonwo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