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3. 17:17 우원식 브리핑
7년 만에 재개될 남북 이산가족 상봉 남측 1차 후보자 500명이 선정됐습니다. 앞으로 상봉 의사, 생사확인을 거쳐 100명의 최종 상봉자를 가릴 것입니다. 수십 년 애끓는 그리움으로 견뎌냈을 이산가족 여러분에게 축하드립니다.그러나 한편으로 너무 아쉽습니다. 생존 이산가족은 총 5만 7천여명 가운데 고작 100명만이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은 너무 가혹합니다. 추첨에서 선정되지 못한 95세 되신 어르신께서 “저는 끝났어요”라고 인터뷰 하시던 장면을 보고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추첨, 생사확인까지 거치고도 만나지 못할까봐 기다리는 시간 동안 조바심에 녹초가 되기 일쑤입니다. 오죽 하면 로또보다 당첨되기 어려운 일이 이산가족 상봉이라고 하겠습니까?저 또한 소식을 듣고 지난 2011년 마지막 ..
2015. 9. 21. 09:07 우원식의 창
이 글은 17, 19대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의 이산가족 상봉기를 담고 있습니다.내용은 저서 '어머니의 강'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10월 29일 오후춘천, 인제, 미시령을 거쳐 약 200km를 가는 도중, 어머니께서는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하시다며 가끔씩 차에서 내려 길거리에 가만히 앉아 계시곤 했습니다.연세가 연세인지라 차에 오래 앉아 가시는 것은 힘에 부쳐 하십니다. 2시까지 도착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런 사정으로 생각보다 늦어지자, 달리는 도중에도 여러 차례 기자들로부터 언제 오시느냐는 문의 전화가 오곤 했습니다.설악산에 가는 길에 60년 전 헤어진 정혜 누님에 대한 기억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빠가 되는 큰형인 영식 형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2015. 9. 16. 15:12 우원식의 창
이 글은 17, 19대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의 이산가족 상봉기를 담고 있습니다.내용은 저서 '어머니의 강'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10월 27일두루두루 알아보니 이산가족 상봉 때 생필품도 좋은 선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집 주변에 있는 마트에 가서 치약, 칫솔, 비누, 털장갑, 속내의 등 생필품을 샀습니다.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북측의 큰누님 성격이 미국에 있는 관혜 누님의 까다롭달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에 가까울 만큼 철저한 성격과 닮았다고 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물건을 사 나가면서 어느덧 누님이 곁에 계신 것 같은 착각도 듭니다. 정혜 누님이 이 물건을 좋아하실까, 어떨까? 저 혼자 생각이면서도 누님과 상의하는 것 같은 마음이 자꾸 들더군요...
2013. 9. 23. 12:21 언론보도
이산가족 우원식의원 “정말 화가 난다” 3년전 노모와 함께 큰누나 만나… “상봉 가로막는 北 비난받아 마땅” “정말 화가 난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산가족 상봉이 미뤄져서는 안 되는데….” 민주당 최고위원 우원식 의원(57)은 21일 분개했다. 25일, 3년 만에 재개될 예정이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우 의원에게 남다르게 다가왔던 터다. 그는 큰누나 정혜(74), 둘째 누나 덕혜 씨(71)가 북에 있는 이산가족. 우 의원은 어머니 김례정 씨(97)와 함께 2010년 10월 30일∼11월 5일 금강산에서 이뤄진 제18차 이산가족 상봉 때 큰누나를 만났다. 어머니는 60년 만의 재회였고 우 의원은 생전 처음이었다. 비록 이번 상봉자 명단에 그의 어머니는 들지 못했지만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우 의원은 북한의..
2011. 2. 7. 11:57 우원식의 창
[노원을 우원식] 누님 만나러갑니다(2) 11월2일 어제 밤에 돌아 왔습니다. 꿈 속만 같았던 금강산에서의 2박 3일 이었습니다. 60년 만에 만나는 기쁨이 정말 말로 형언 할 수 없을 만큼 컷지만 생이별을 다시 해야 하는 고통은 그 보다도 몇배는 더 큰듯합니다. 저도 관념 속에만 있던 이산 가족의 고통이라는 말을 정말 진하게, 온전히 느끼고 왔습니다. 분단의 아픔, 생 이별의 고통은 한 가정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차츰 차츰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산가족의 상봉이 무엇인지 하나씩 저의 느낌대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마치 꿈을 꾸고 온 것같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행복한 시간이었고 우리 어머니의 간절한 60년의 한을 푸는 시간이었습니다...
2010. 11. 7. 17:42 우원식의 창
♣ 어머니 김례정여사의 목숨을 건 금강산 여행길... ‘살아있데~~?’ ‘만날 수 있데~~?’ 북쪽에서 우리 큰누님인 정혜누님이 우리가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적십자를 통해 듣고 어머니가 처음 한 말씀이다. 북한에서 남쪽의 가족을 찾는 200명 명단에 정혜누님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족이 너무나 오랜 기간 찾고 싶었던 정혜누님이 우리를 찾는다니.. 생사조차 모르던 그 애절함,,,, 6.25의 혼란기때 6명의 자식을 모두 거느리기 어려워 그중 첫째아들과 위의 두 딸을 아버지의 고향인 황해도 연백으로 보내게 되었다. 엄마, 아버지로부터 떨어지기 싫어 가지 않겠다며 발버둥치는 정혜, 덕혜에게 사탕까지 사주며 달래서 억지로 큰아들 영식 편에 보낸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