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나 노동계 모두 세상은 자신들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경영계나 노동계 모두 세상은 자신들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은 9일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에서 논의되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한편 노동계 역시 지난 6일 자신들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는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반대하며 총파업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은 돈만 벌수 있다면 동포들의 삶이 어떠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먼저 경총 이수영 회장에게 묻는다. 이 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기업인의 스트라이크 엑서더스를 말하였는데 그렇다면 기업은 돈만 벌수 있다면 동포들의 삶은 어떠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또한 이 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과 동등하게 조정할 경우 기업은 연간 42조6천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경영계는 비정규직에게 바라는 것이 고용의 유연성인가? 비용 절감인가?

이 주장은 경영계가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가 노동의 유연성이 아니라 비용 절감차원으로 그랬다는 고백에 다름아니다. 왜냐하면 42조6천억 원이야말로 그동안 경영계가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이윤으로 보존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계는 비정규직 입법과정에서 노동의 유연성만 확보된다면 차별과 차이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논의해 시정하겠다.’는 이 회장의 주장은 공염불이다.

노동의 유연성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똑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가 단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차이로 차별받고 있는 현실, 비참한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규에 대한 경영계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 우리 사회의 동반성장은 요원하다.

또 이 회장 말대로 정치권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표를 의식했다면 노동계가 주장하는 사유제한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 법안이 논의될 때마다 반복되는 노동계의 총파업 주장, 그리고 때때로 이뤄어지는 민주노동당의 회의실 점거를 보면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세상을 제대로 보려는 의지조차 없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사유제한만이 비정규직 보호장치인가?

다음 노동계에 묻고 싶다. 왜 기간제사용 시 ‘사유제한원칙, 동일노동동일임금원칙,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만이 비정규직 보호의 원칙인가?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를 3년 이상 사용해서는 된다는 우리당의 주장이 왜 총파업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가?

진정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법이 여야간의 밀실합의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가?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참석하고 있고 또 모든 회의가 속기록으로 남게 되는 논의가 밀실합의라고 정말 생각하는가?

2005년 4월, 노·사·정은 15차례에 걸쳐 105시간 그리고 2005년 12월, 8일간 법안심사소위의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과 특수고용노동자 법적 권리문제를 별개로 처리하자고 합의하는 등 상당한 합의를 했다. 민주노총이 지도부 선출시기이기 때문에 법안 처리를 늦추라는 것은 지난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원칙을 전제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파업하겠다는 것 역시 걸핏하면 공장을 해외로 옮기겠다는 경영계 주장처럼 국민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85%가 100인 이하 기업, 50%이상이 10인 이하의 영세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우리당은 노동계의 주장대로 사유제한을 하게 되면 이들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럴 경우 이들 중소기업에 큰 부담이 되어 오히려 대규모 실업사태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유제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일방적으로 사유제한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사유제한을 해도 중소기업이 지금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존속할 수 있다는 입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있는 태도이다.

노동계의 주장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심각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더 이상 늦춰질 수 없다. 지금 논의되는 법안은 어떤 사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든,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임금, 근로조건 등에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법안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그 법안을 사유제한 하지 않으면 법안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을 하는 지금도 차별 임금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기고 경영계, 노동계는 제자리로 돌아가라.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비정규직 법안은 경영계에게도 비난받고, 일부 노동계에서도 비난 받고 있다. 이렇게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양쪽에게 비난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 자체가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은 쟁점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내기위해 더 토론하겠다. 이제 충분히 의견이 전달된 만큼 비정규직 입법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기고 경영계와 노동계는 상호비방, 국민협박을 중지하고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남은 기간 동안 ‘비난’이 아니라 ‘논의’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하도록 하자.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것, 경영계나 노동계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5. 2. 10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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