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를 만들려면 좌우가 아니라 아래로 현장으로 가야 한다. 고통 받는 국민의 삶의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새 정치를 만들려면 

좌우가 아니라 아래로, 현장으로 가야 한다.

 고통 받는 국민의 삶의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한때 우리가 실용과 개혁을 가지고 지독하게 논쟁한 적이 있다. 지금도 좌냐, 우냐, 중도를 가지고 각자 주장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의 두 가지 모습이 대비된다. 북벌을 준비하는 허생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상투와 도포를 자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실용이면서 가장 개혁적인 모습니다. 또 한 장면은 생활이 곤궁했던 허생이 돈을 빌려서 과일과 말총을 매점매석해서 큰돈을 번다. 이것은 실용이라 할 수 있지만 반개혁이다.

가장 실용적인 것이 가장 개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실용을 빙자한 반개혁은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그러니 실용과 개혁이라는 말에 집착해서 내분투쟁을 일삼은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를 되돌아본다.

새정민주연합이 정강정책과 관련해서 분배니 성장이니 하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기간 우리사회는 성장했다. 우리사회가 성장했지만 국민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왜 그런가.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골목상권, 비정규직은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된 반면 대기업 재벌만 성장하는 나쁜 성장이 문제였다. 결국 성장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며 우리가 깊게 반성해야 될 대목이다. 우리는 여기서 실패한 것이다.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민주주주의 운동에 참여한 우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것이 우리의 가장 깊은, 뼈아픈 패인이다.

성장의 방점을 찍는다느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나 하는 먹물들이나 알아먹을 관념적 유희에 집중하는 사이, 국민의 고단한 삶과 노동의 고통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진보가 진정으로 소홀히 했던 것은 중소상공인, 골목상권, 비정규직 등 노동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통한 국민의 주머니를 채우는 성장이었다. 국민들의 고단한 삶이 존중받는 민주주의가 우리의 길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우리의 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성장의 정체성은 이 점을 보다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새누리당과 우리당의 다른 지점이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새 정치는 ‘을’들의 한숨과 눈물이 있는 현장 그곳에 답이 있고, 그 현장 속에서 함께 비도 맞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두 손 꼭 부여잡고 함께 일어나는 것이 새 정치다. 현장에서 신뢰받고 든든한 진지를 구축하는 정치, 이것이 새 정치인 것이다.

우측으로 넓게 쳐서 중도를 얻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좌측으로 넓게 쳐서 중도를 얻어서 이긴 게 아니다. 밑으로 내려간 척한 것이다. 서민들의 삶이 고통에 천착하는데 시늉을 낸 것이다.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 좌측으로, 우측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관념이다. 새 정치를 만들려면 좌우가 아니라 아래로 현장으로 가야 한다. 고통 받는 국민의 삶의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제129차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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