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의원 이산가족 상봉기 <마지막화>

 이 글은 17, 19대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의 이산가족 상봉기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저서 '어머니의 강'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마지막화>

"언제 다시 만날까, 또 다시 이별..."

11월 1일 또다시 이별


오전에 있었던 1시간가량의 짧은 이별 상봉.
이런 기가 막힌 생이별의 순간이 이 땅 말고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참으로 애절함을 넘어 참혹한 이별의 순간이었습니다.
94세 어머니의 다 쭈그러진 얼굴은 온통 울음 그 자체였습니다. 눈물도 말라 버린 그 지친 눈은 붉게 충혈되어 갔고…… 이미 71세 노인이 되어 버린 딸의 손을 붙잡고 겨우 말을 잇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게 끝일 거야…….”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러움에 안타까워 안절부절못하시는 어머니. 한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누나의 손등에 대고 입을 맞추십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슴이 답답하다며 의자 뒤로 머리를 젖히시고 맙니다.

 60년간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가슴에 고이 묻어 두어야 했던 애절한 그리움……. 만나자마자, 당신의 딸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생으로 이별해야 한다는 뼈를 저미는 고통에 탈진 상태로 빠져든 것입니다. 적십자 의료진이 달려오고 혈압을 체크합니다. 진료를 위해 밖으로 나가시자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곧 헤어져야 하는데 어찌 떨어지느냐며 물리치시고, 진정제 알약만을 드시고 애써 마음을 추스리십니다.


한 시간의 상봉 시간이 끝나고 정혜 누님은 어머니와 영식 형에게, 나와 난혜 누나와 천식 형은 정혜 누님에게 큰절을 하고 부둥켜안았습니다.


따뜻하게 끌어안는 누님의 가슴…… 언제 다시 느껴 볼 수 있을까. 속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고 있는데, 결국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던 정혜 누님이 굵은 눈물을 먼저 쏟고 말았습니다.

 


“누나, 잘 살아! 우리끼리만 행복하게 살아서 미안해! 이렇게 우리를 찾아 주어 너무 고마워! 빨리 통일을 이루고 그때 다시 만나!” 이렇게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헤어지기 전 온 가족이 정혜 누님의 손을 맞잡았다. 언제 다시 저 손을 잡으려나…….


북측 상봉단이 먼저 나가 버스에 올라타고, 남측 상봉단이 버스 밖에서 인사를 나누는 순서.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애절하고도 간절하게 부여잡습니다. 그 따뜻한 손길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려는 듯이……. 이미 이별이 예정되었던 짧은 만남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별은 왜 이리도 잔인한 것일까요.


지난 60년간 남북을 완전히 나누어 놓았던 다른 이념, 다른 체제도 혈육을 갈라놓을 수는 없었음을 이미 우리의 만남과 체험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60년 동안이 온통 이별, 분단이었는데 또 갈라져야 하다니! 겨우 사흘간, 짧은 만남의 기쁨 끝에 다시 헤어지는 게 이렇게도 고통스러울 줄이야!


“누나, 잘 가…… 잘 살아……. 우리 꼭 다시 보자!”


목이 메어 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내 눈에서 어느덧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상봉장을 가득 메운, 차창을 사이에 두고 1분 1초가 아쉽다는 듯이 가족의 손을 간절하다 못해 처참한 형상으로 부여잡고 있는 이 사람들…… 이들은 이런 상황을 일부러 선택한 것도 아니고 무얼 잘못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단지 이 나라의 정치가, 냉전시대의 잘못된 정치가 우리의 국토와 국민을 희생시킨 게 아닌가!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정치가 잘못되고, 정치가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때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게 되는지 한눈에, 한숨에 드러나는 이 현장…… 똑똑히 기억해야겠다, 가슴속에 깊이 새겨야겠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그 시대의 위정자들…… 60년이 지나도록 이 고통을 이 정도로밖에 관리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위정자들 역시…….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멍에를 해결 못한 책임을 져야 할 현 시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정혜 누나! 덕혜 누나! 엄마, 엄마!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누님을 보게 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또 한 번의 간절하고 절박한 깊이의 고통을 안겨 드리게 된 것이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기껏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나이가 들면서 작아진 키 때문에 차창 밖으로 내민 정혜 누님의 손을 잡을 수 없었던 어머니를 번쩍 안아 올리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관념 속으로만 느끼고 있었던 분단의 아픔,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날의 현장을 겪으면서 나는 완전히 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이 끝나고 정혜 누님을 실은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면회소로 돌아오는 길…….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실감합니다.


온몸의 관절이 쑤시고 머리가 이리 아플 수가 없습니다.
아아…… 뼈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란 이런 건가 봅니다.

 

주무시는 게 아니다. 작별상봉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두 손을 맞잡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표정 없이 앉아 계신 어머니…….
어머니 가슴속에 60년 세월의 강이 어떻게 휘돌아 갈까.

 

<끝>

 

이 글은 우원식 의원이 이산가족 상봉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모든 것이 담긴 글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을 염원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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