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김한 선생이 친일파? 후손으로서 매우 유감입니다

최근 저의 외조부인 독립유공자 김한 선생에 대해 친일파라고 인터넷 상에 악의적으로 퍼트리는 분들이 있어 후손으로써 우선 매우 유감입니다.

2005년 국가보훈처는 관련 기록을 확인해 김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추서한 분을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임을 알려드립니다






<스탈린 시대 정치탄압 한인 희생자들 보고서 안에 수록되어 있는 김한 선생>


친일혐의로 러시아에서 처형되었다는 내용은 스탈린시대 정치탄압 한인(고려인) 희생자들’(사진자료)이라는 러시아 자료집을 통해 당시 스탈린정권이 김한 선생을 비롯한 한인 지도자급 인사 3000여명을 일본밀정 등으로 몰아 숙청한 사실과 그것이 정치적 탄압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유가 밝혀짐에 따라 김한선생은 195812월 복권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에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것입니다

다만, 관련 내용이 누락된 채 유공자 선정전에 발행된 국가보훈처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발간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이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19302월 소비에트러시아로 갔으나 그 뒤 일본의 밀정이라는 혐의를 받고 사형당했다로만 기록이 되어 있어 해당기관에 정정보완 요청도 해놓았습니다.

이와 관련한 역사적 배경이 된 사건이 바로 1937년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소수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또한 불필요한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당시 연해주에 터전을 잡고 살던 한인들 20만여 명을 중앙아시아지역에 강제이주 시켰던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스탈린의 소련은 강제 이주를 반대 또는 저항하는 한인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을 반역죄, 즉 일본 밀정이라는 이유 등으로 숙청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만행은 대규모 이주가 있었던 37년은 물론, 3839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김한 선생도 이 과정에서 38년에 형장의 이슬이 되셨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홍범도 장군도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돌아가십니다. 나라 잃은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입니다.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 1923년 1월 의열단 사건 국내책으로 검거>


저는 저의 외조부인 김한 선생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30년 전부터 찾아 왔습니다. 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종로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등등.. 외조부의 행적을 찾다가 러시아에서 38년 일본밀정으로 처형되었다는 대목에서 꽉 막힌 적이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간의 행적을 살펴볼 때 특히 김상옥 의열단 사건 때 신문에 보도된 외조부의 최후진술 내용을 감안하면 일본 밀정이라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하나의 자료를 받아들었습니다. ‘스탈린시대 정치탄압, 한인 희생자들이라는 러시아어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를 받아들고 넋을 놓을 정도로 통곡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통곡은 20년 전 밀정혐의 의혹에 대한 해답을 찾은 저의 기쁨이기도 했지만, 일본 밀정이라는 말도 안되는 혐의로 정치적 탄압을 받고 형장에 섰을 한 독립운동가의 심정과 그 억울함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땅이라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자료로 외조부의 독립운동의 역사는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외조부는 국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친일파라니요. 이런 왜곡에 대해 저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서훈한 독립유공자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매도하는 것입니다.

독립유공자 김한선생에 대해 사실관계를 이와 같이 분명히 밝혀드렸음에도 정정하지 않거나 계속적으로 적시하는 경우에는 고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독립유공자 김한 선생을 소개합니다 >> http://woowonshik.tistory.com/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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