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7.3) [취재파일] '의원님들의 단식선언' 정말일까?

[취재파일] '의원님들의 단식선언' 정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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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은 '우리정부와 외국과의 축산물 협상'에 항의해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나요? 기자가 모 의원이 단식중인 국회 사무실과 가까운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렀다 화장실 안에서 카스테라를 먹던 모 의원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당 관계자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 현장을 목격한 기자에게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는 얘기는 지금도 국회 주변에 전설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언론과 국민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정치인들의 '쇼'는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우원식, 윤후덕 의원이 오늘로 엿새동안의 단식을 마쳤습니다. 우 의원. 넉넉했던 얼굴은 몰라보게 수척해졌습니다. 빈 공간은 희끗한 턱수염이 대신 메웠습니다. 책상에는 물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 탈수증세를 예방하기 위해서 물 섭취는 필수입니다.

"단식 엿새 동안 5kg이나 빠졌다"며 오히려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단식 도중에 혹시 빵조각이라도 안 드셨냐는 짖궂은 질문에  "에이~이 사람, 단식 중에 먹으면 설사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은 B급 유머를 좋아한다"며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함께 단식에 참여했던 윤후덕 의원의 얼굴은 더 검붉어졌습니다. 해변가에서 근사하게 태운 생기 넘치는 구릿빛 피부가 아닌 사막의 마른땅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허리띠 구멍은 한 칸이 더 줄었습니다. 단식의 후유증입니다.

 

단식농성

 

 

엿새동안 두 의원은 레드카펫이 깔려있는 국회 본회의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 켠에 낮은 책상을 갖다놓고 연좌 단식 농성을 벌였습니다. 여야 모두 민생국회를 외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6월 임시국회에서 민생법안은 국정원 국정조사와 NLL 대화록 파문에 묻혀 정작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을'을 위한 민생법안을 6월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하자고. 그러나 이들의 소리없는 외침을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촉발된 여야의 대결구도는 NLL 대화록 공개 파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야의 공방과 폭로전이 이어졌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파문을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갔습니다. 언론은 여야의 입씨름에 함께 춤췄습니다. 'NLL 포기 발언'을 둘러싼 공방속에 대한민국 정치는 이념으로 국민을 편가르기하는 과거로 되돌아갔습니다. NLL 대화록 사전유출 의혹은 '도청'과 '공작'이라는 해묵은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현 정권의 정통성과 국론분열을 막기위해서라며 여야가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여야가 규명하고자 하는 실체는 방향이 다릅니다. 야당은 전현정권이 공모한 대선개입이라는 공작정치의 시나리오를 원하고 있고 여당은 국정원 댓글 의혹을 제기한 야당과 국정원 전현직 직원의 매관매직 의혹의 실체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광복절까지 국정조사는 이어지겠지만 여야의 동상이몽으로 아마도 의미있는 결과물을 얻어내기란 쉽지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단식을 왜 선택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원식 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 6일동안 단식을 하면서 지금 시대 상황에 중심에 서지 못하는 단식이 얼마나 언론의 관심을 못 받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던 것은 전국의 많은 을들이 우리의 단식을 보며 힘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많은 분들이 농성장을 찾아와  '존재감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하기 위해 단식을 하느냐. 당신들을 보고 우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겠다 희망을 얻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소중한 한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7월 2일 6월 국회 마지막 날, '을'을 위한 4개의 의미있는 법이 통과됐습니다. 바로 과도한 위약금, 노예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CU 방지법',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모든 상가 건물 세입자가 5년간 임대계약 갱신을 건물주에게 청구할 수 있는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 그리고 전세금 뗄 염려를 덜게 하는 '전월세상한제법'입니다. 남양유업 사태 방지법과 불법채권추심법, 학교비정규직법 등은 여야 의원들의 이견으로 여전히 상임위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민생국회로 만들겠다는 여야의 다짐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기자들과의 좌담회 도중 국회 정무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덥수룩한 수염의 야당 의원들은 경제민주화 법안 통과에 큰 도움을 줬다며 정부 기관장과 여당 의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본회의장 앞에서 모처럼 정부와 여야 의원들이 민생법안 통과를 스스로 자축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에겐 국정원 대선개입, NLL 대화록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보다 민생법안 처리가 피부에 와닿는 시급한 문제일 것입니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있었더라면 사실 국회가 최우선 과제로 염두해 뒀어야 할 법안들입니다. 6월 임시국회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이어질 정기국회에서는 민생법안 처리를 요구하는 여야 의원들의 소리없는 단식농성이 더욱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습니다.

SBS 이한석 기자

기사원문보기 ->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862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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