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남대문 YTN까지 다녀왔습니다


[자전거로 남대문 YTN까지 다녀왔습니다]

매주 기다리던 시간

수요일 저녁 8시 30분

녹천교 아래의 ''''노원 즐거운 자전거'''' 모임을 불가피하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속해 있는 모임인 민주연대에서 최근 YTN사태 때문에

남대문의 YTN사옥 앞에서 ''''구본홍 낙하산 인사 반대와  직원 징계 철회를 위한 촛불 집회''''가 있어

시간이 겹치는 관계로 빠질 수 밖에 없었죠.

특히 제가 이모임의 대변인이고 이날 집회의 사회를 보아야 함으로  더욱 그랬습니다.

약속한 수요일 자전거...

자전거는 타고 싶고 시간은 겹치고.....

그래서 결론은 남대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자였습니다.

마침 김생환님이 곁에 있어 이 계획을 말하니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해 처음하는

시내 길 모험의 도반도 있어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고민은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 가였습니다.

동부간선도로 거쳐서 청량리 쪽으로 나가 종로통을 거쳐서 갈까?

아예 처음부터 시내 길인  드림랜드를 거쳐 미아리- 창덕궁 -안국동 - 광화문을 거쳐 갈까?

김생환님과 약속 장소인 벽산상가를 가는 도중 우연히 자전거로 퇴근하던 천애재활원의

낮익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동부간선도로를 거쳐 청개천 길을 따라 가다가 시내로 들어서기로 하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하계동 다리 아래로 내려와 동부간선도로로 접어드니 시간은 6시 20분

드디어 출발!!!

어느덧 짙은 가을.....

서늘한 바람으로 강가는 가득했습니다.

페달을 밟을수록 얼굴에 다가오는 상쾌한 바람, 약간 비릿한 강 특유의 내음이

내 몸 구석구석 잠자고 있던 수많은 세포들을 깨우는 듯합니다.

길지는 않치만 머릿결 날리는 느낌,

페달을 밟을 때마다 느껴지는 디리 근육의 움직임은

나의 힘있는 살아 있음을 확인 시켜주는 그 자체였습니다.

강가 어두운 저편에서 전등을 깜빡이며 달려오는 자전거들은 옴몸에 긴장감도 더해주고

어둠에 가려 흐릿하지만 중란천변에 피어있는 여러 들꽃, 코스모스,글라디오러스, 보리등

자전거에 지나치는 모습은

참으로 자전거를 타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여러 속도에서의 세상보기는 색다른 느낌과 감동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자동차의 속도는 문명의 속도이지요.

큰 것, 많은 것을 빠르게 볼 수는 있지만

그 빠름은

눈에 들어오는 많은 것, 그 각각이 갖고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볼 수는 없지요.

제가 좋아하는 속도는 걷는 속도이지요.

섬진강, 금강, 한강, 낙동강을 걸으면서 작은 생명들의 꼼지락거림도 볼 수 있었고

네잎크로바도, 산딸기도 찾아내고 딸 수 있는 생명의 속도 이지요


그런데 자전거의 속도는 좀 다릅니다.

색다른 자전거의 높이는

절묘한 자전거의 속도와 어우러져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냅니다.

적절한 속도의 바람이 전달해 주는 시원함,

적절한 시각의 흔들림,

두 바퀴의 적절한 긴장,

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상쾌함.

그 자체가 자전거의 속도입니다.

어두운 강가 길,

물결에 흔들리는 건너편 동부간선도로 가로등의 모습을 어릿어릿 보면서

어느덧 토끼굴을 지나  한양대 못 미쳐  청계천 가로 지르는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청계천 길을 접어들었습니다.

한 5Km쯤 달렸을까?

자전거 도로는 끝이 나고  마장동 쯤 되는 곳으로 올라온 우리는

홈플러스라는 큰 네온사인이 붙어 있는 건물을 앞에 두고 갈 길을 헤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전거 길은 끝이 났습니다!!

청계천 양 안의 인도는 너무나 좁아 자전거로는 도저히 통행할 수 없었고

청계천 주변 상가가 있는 길은 온갖 물건들이 놓여져 있어 기가 탁 막혀 버리더군요


기후변화 협약을 이야기하고 CO2배출량의 억제가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요즈음

그 핵심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자전거인데,

국제도시라는 서울의 한복판에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기가 막혀 버리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얼굴의 화끈거림을 어두움에 묻고 다시 용기를 내서

청개천변 상가 쪽 온갖 물건들과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쪽으로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차가 가는 방향을 잡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 했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늘어선 자동차 사이를 뚫고

맨 앞으로 나와 파란신호등을 기다려 자동차와 함께 출발하고

가는 길가에 큰 차가 주차해 있으면 주변 눈치를 보아가며 인도로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전거에 목숨을 건 사람마냥

차선 한가운데로 나와 용감하게 질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로 올라와서는 지나가는 사람들, 무질서하게 놓여진 온갖 물건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가을밤 청개천 주변의 단풍이 익어가는....

제법 서정적인 느낌이 들어야 하는 길을

목숨을 걸고(?) 치열한 질주법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러고 보면 2년 반 전에 처음 시작한 자전거인데

이만하면 나의 실력이 제법 경지에 다다르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도 해 봅니다.


그렇게 달려 헐덕이는 숨을 몰아 쉬면서 청계광장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었습니다.

청계광장에는 한편에는 근사한 조명에 클레식합주단의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가을밤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잔잔하고도,

금방이라도 단풍이 후두둑 떨어져 내릴 듯한 만추스러운 음률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불빛이 요란한 청개천 변에는 농구공만한 붉은 공을 큰 투명상자에 넣기 놀이가 어지러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 곳은 젊은이들의 환한 웃음소리와 톤 높은 말소리들이 잘 어우러겨져

가히 ‘젊음의 광장’ 그 자체 였습니다.


잠시 그 광경을 구경하다 집회 시작 시간인 8시여 맞추느라 서둘러 남대문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남대문 옆 YTN사옥으로 가는 길 역시 간단치 않았습니다.

건너는 길을 찾지 못해 프레스센타 앞에서 지하도로 자전거를 낑낑 메고 들어갔다가,

다시 낑낑 메고 끌고 올라오니 그동안 타고 온 짧지 않은 거리의 피로와 더해져 몸은 녹신녹신....


휴......


그렇게 YTN사옥에 도착하니 정각 8시.

거의 두시간에 거쳐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미 많은 민주연대의 회원들과 YTN의 노조원,

그리고 지나가다 잠시 멈추어선 시민들로 YTN사옥 앞은 가득 사람으로 차 있었습니다.


''''공정방송 해치는 낙하산 사장 구본홍은 즉각 물러가라''''

언론탄압, 직원해고 이명박은 즉각 중단하라!''''

 

1시간 남짓

사회자로서 멋드러진 사회를 보고

집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청개천 길로 냅다 페달을 밟았습니다.


저녘도 먹지 않아 너무나 배가 고파 이대로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청계천 2가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배고픈 탓도 있었겠습니다만 음식 맛이 가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어딘지 가르켜 드릴 수도 있지만

그건 비밀....

수요일 밤의 ‘노원 즐거운 자전거’에 함께 하는 분들만 가르켜 드릴까 합니다.

알고 싶으시면 나오시지요!!!


오던 길을 다시 되짚어 달려왔습니다.

중랑교를 넘어서는데 이미 시간은 11시를 넘어가고

중란천변은 한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가한, 그래서 긴장감도 덜한

중랑천 변에는

붉은 글라디오러스,

흰 들국화,

파란 보리,

물결에 흔들리고 또는 부숴지는 달빛,

간간이 얼굴에 와 부딪히는 작은 날벌레,

아주 정겨운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왕십리 행당동의 우리 동네의 그 모습이,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짙은 가을 잠자리를 잡기위해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가던 내 모습도 보이고,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네 도랑을 뒤집어

물고기 새끼라도 찾던 그 정겨운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계동 들어오니 11시 20분

6차 모임을 끝낸 우리 동호인들이 노원역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오늘은 미안....


제 생애 최초의 시내 자전거 주행은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세심하게 배려하면

시내 자전거 주행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 했습니다.

시내에서는 오히려 자동차 보다

자전거가 훨씬 효율적인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고요.


불가피한 상황만 아니면 앞으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도 햇습니다.

우리 동호인들하고 청계광장까지 자전거 여행도 한번 해 봄 직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즐겁고 신나는 하루였습니다.

목숨을 건 결단의 하루이기도 했습니다(ㅎㅎ).


다음 수요일 저녘 8시 30분  녹천역 아래

‘노원 즐거운 자전거’의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며

6차 모임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저도 그날 자전거를 타는 약속을 이행했다는 보고를 드리며

이만 시내주행 보고를 마칩니다.

    

                                                                         2008년  10월 10일     우  원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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