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해야 할 것은 참여정부의 이념과 정체성이 아니라 획일과 권위에 물들어 과거로 회귀하려는 독재권력의 잔재다

70년대 후반 대학 생활을 함께 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의 모임 ‘아침이슬’

“박근혜 대표의 국가정체성 문제제기에 대한 의견”

검증해야 할 것은 참여정부의 이념과 정체성이 아니라
획일과 권위에 물들어 과거로 회귀하려는 독재권력의 잔재다

우리는 야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묻는 질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화해와 협력을 추구해야 할 남과 북의 특수성을 배제했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대립과 갈등만을 경험해왔던 박근혜 대표를 생각한다면 군의 보고 누락 파문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송두율 교수를 석방한 법원의 판단조차 대통령에게 그 정당성을 묻는 박근혜 대표의 인식 능력에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유신 정권의 핵심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런대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상전향을 강요받다가 국가 폭력으로 사망한 장기수를 민주화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한 의문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야당 대표가 동의하지 못하는 것 역시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야당 대표로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것 역시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수혜자였던 한나라당의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이해는 할 수 있다. 더욱이 누더기가 된 친일청산법을 개정하는데 반대하는 박근혜 대표지만, 자신의 아버지에 누가 될까 염려하는 자연인 박근혜 씨의 심정을 생각하면 그런대로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가 참여 정부의 이념과 정체성의 혼란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들의 원인이 길게는 해방 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가깝게는 지난 70, 80년대의 독재 권력의 잔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새삼 지적할 생각은 없다.

유신 시절 짓밟힌 민주주의의 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대학에 들어간 우리로서는 유신 정권의 퍼스트 레이디인 박근혜 대표에게 개인적 차원의 유감은 있으나, 역사적 사회적 차원의 책임을 묻고자 할 생각이 아직은 없다. 유신 시대라는 불행했던 과거사는 21세기 화해와 평화의 미래를 위해 극복의 대상일 뿐 개인적 차원의 감정 풀이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가 참여정부의 이념과 정체성 운운하며 문제 제기하는 내용과 형식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 명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강력히 비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원적 가치의 존재이며, 나와 다른 가치에 대해서조차 동의는 하지 못하더라고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자세야 말로 민주주주의 기본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나 송두율 교수를 석방한 법원 판단 등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원성의 존재 증명이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다고 이념이나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 박근혜 대표에게 유신 독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장 1조 2항의 선언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 가치다. 이 정신에 따라 국민은 대통령을 직접 뽑았으며, 대통령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바탕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에게 이념과 정체성을 묻는다. 이것은 이념과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의 존재를 부정하고 국민에게 권력을 탈취한 유신 정권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박근혜 대표가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게 이념과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신새벽 뒷골목에서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숨죽여 흐느끼며 민주주의를 이야기했고, 아침이슬을 불렀다. 그 시절, 우리가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부정하고 나와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이념과 정체성을 문제 삼는 그런 민주주의는 결코 아니다.

독재 권력에 억눌렸던 다원적 가치가 자신을 드러내며 민주주의의 참 모습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이 때, 과거 그 다원적 가치를 억압했던 권력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야당의 대표가 국민이 직접 선택한 대통령과 정부에게 이념과 정체성을 묻는 이런 민주주의를 보고자 우리가 70년대와 80년대에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표가 참여정부에게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정체성을 묻는 그 내용 자체가 과거 독재 권력의 이념과 정체성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증명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우리가 검증해야 할 것은 참여정부가 아니라 과거 친일 세력으로부터 70년대 유신독재, 80년대 군사독재 시절까지 이어져 온 획일성과 권위주의, 그것에 물든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드리워져 있는 독재적 발상의 잔영이다.

2004. 7. 28

▢ 아침이슬 : 김민기 작곡 작사의 ‘아침이슬’은 70년대 중반 그 시대를 고민했던 사람들의 최소공배수입니다. 70년대 후반 당시 대학에 입학하여 20대 초반의 푸른 청춘을 유신 독재와 함께 보냈던 대학에 입학하여 그 당시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던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아침이슬’이라는 이름으로 친목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참여 의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 노영민, 노웅래, 선병열, 우원식, 우윤근, 유기홍, 유승희, 이상민, 이영호, 전병헌, 한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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