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 '적진(?)에 들어가다

▲ 8일 저녁 열린우리당 '아침이슬' 소속 의원 8명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 향군회관을 방문해 재향군인회 회장 및 자문위원단을 만나 국가보안법 존폐와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좁혀지지 않는 서로의 입장차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향군 방문 얘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는데 우리 사이에 휴전선이 있는 것도 아
니지 않나. 직접 만나 뵈니 우리의 충정도 이해해주시고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리라는
점을 느꼈다."


"적진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나이먹은 사람 대접할 줄도, 남의 말을 들을 줄
도 안다는 점 높이 평가한다."


대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댄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과 오자복 성우회
회장의 말이다.


우 의원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아침이슬' 소속 의원 8명은 8일 오후 6시 송파구 신
천동 향군회관을 방문해 재향군인회 회장 및 자문위원단을 만났다. 열린우리당 내
70년대 말 급조치세대 의원 모임인 아침이슬은 국보법 전면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향군 측은 강경한 폐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오 회장의 표현대로 '적진'에 들어간 셈이다.


향군 "국보법 폐지 하자는 사람들이야말로 북 추종세력"

이날 면담은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뢰감을 형성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열매를 맺기는 무리였다. 국보법 존폐
와 관련해 양측은 시종일관 좁히기 어려운 의견 차이를 보였다.


향군은 최근 잇따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이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했다는 명백
한 징후가 없는 한 국보법 폐지는 적전 무장해제와 같다"며 "향후 전 회원, 전 조직
을 총동원해 국보법 폐지 저지에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지난
달 26일에는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인권위의 국보법 폐지
권고를 규탄하기도 했다.


향군 지도부는 이날 면담에서도 북한의 대남 적화노선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보법 폐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상훈 향군 회장은 "우리가 금강산 관광도 가고 하니 북한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며 "아직도 선군정치를 하고있는 나라와 대치하고 있
는데 우리만 국보법 폐지해서 어쩌자고 그러느냐"고 말했다.


김점곤 예비역 육군소장은 "용감무쌍하게 우리를 방문해 주셨는데 우리가 국가안
보만 내세워서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이 변하지 않은 현 상황을
생각할 때 국보법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정창인 향군 안보연구위원도 "국보법이 악법이라고 하는데 왜 악법이냐"며 "국가의
안보 지키자는 법이 국가보안법인데, 이를 악법이라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북한이
거나 북한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은 아침이슬 소속 의원들에 대한 불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 위원은
"'아침이슬'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묘한 느낌 들었다,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생각을
하면서 지은 이름인 것 같은데 이제는 체제에 저항하는 위치 아닌 국가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다"며 "아침이슬이란 리더로서의 잘못된 인식을 단적으로 표현한 명칭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은 "국보법을 없애자는 것은 과거 핍박받던 위치에서 이제는 승리를
쟁취했으니 유신시대의 상징을 없애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만세계에 알리자는 의도로
비친다"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채명신 향군 자문위원도 "이 나라 한번 잘 해보겠다는데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국보법은 폐지해서는 안된다"며 "북한은 아직 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만 일방
적으로 무장해제 하느냐"고 반문했다.


▲ 재향군인회측 인사들이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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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이제는 '법리적 햇볕정책'으로 북 변화 이끌어내야"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보법을 폐지해도 안보 공백이 생길 걱정은 없다는
점과 공백이 우려된다면 형법을 보완하는 방법이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데 주력했
다.


이상민 의원은 형법 제정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국보법이 폐지돼도 처벌공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국보법은 해방 직후 생긴 임시법이고, 형법 제
정 당시 이미 이 임시법인 국보법의 흡수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며 "안보수호는
형법 본연의 역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의원은 "국민의 정부가 '사회·경제적 햇볕정책'을 폈다면, 이제는 '법
리적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체제의 우월성이 입증된
우리가 먼저 반목 아닌 대화와 화해로 북한을 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영민 의원은 "과거에는 생일이 9월 9일(북한 정권수립일)이라거나 집이 빨간 벽
돌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국보법이 존재
하는 한은 과거처럼 또다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국보법의 반인권성을 설명했다.
또 노 의원은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나 우월성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국
민의 자신감에서 온다"며 "국보법은 안보에 도움이 되기보다 체제의 우월성과 자신
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와 인식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열린우리당 '아침이슬'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가보안법을 악법이라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북한이거나 북한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정창인 향군 안보연구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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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와인 건배로 마무리

이날 면담에 갈등과 대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종 농담을 건네며 화기애애
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고, 면담 후에는 양측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표했다.


한광원 의원은 향군 자문위원들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규약이나 대남적화노선
등을 거론하며 불변성을 강조하자 "북한에 대한 연구가 너무 깊어 이것이 국보
법 위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늦었는데 어르신들께서 밥 좀
사주시라" 등의 우스개를 건네 긴장감을 식히고 웃음꽃을 피우게 했다.


면담이 끝난 뒤에는 면담에 대해 양측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유승희 의원은 "역사적인 경험에 따라 국보법에 대해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는 점을 느꼈다"며 "국보법 개폐 문제가 논란이 되고있는 시점에 서로 반대되
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의견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도 "향군 어르신들이 국보법 폐지를 가장 많이 우려하실 것 같아
면담을 요청한 것"이라며 "양극단의 의견을 가진 이들도 대화와 토론을 하면
합일점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 좋은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향군 측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이날 향군 대표단과 함께 면담에 참석한
이진우 변호사는 "'아침이슬'이라고 해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막상 대해보니
감정적이거나 양분 논리에 입각한 논의보다 합리적인 태도를 갖고있어 좋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고, 이상훈 회장도 "여당 의원들이 진지한
태도로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몇시간 논의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무리이겠으나 앞으로도 대화로 해소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이날 면담은 약 2시간에 걸쳐 향군 중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면담 후 양측은
서로의 발전을 기원하는 와인 건배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 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을 비롯한 자문위원단이 면담을 마치며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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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담 뒤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국회의원과 자문위원단이 골고루 섞여 앉아서 국가보안법 존폐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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