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지금 당장 폐지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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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북한도 응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은 전혀 폐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남북문제의 본질은 경기장에서 한반도 기를 들고 북한을 응원하기도 하고 북한을 응원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 있지 않다. 운동 경기에서 북한을 응원해도 되는 상황이 곧 진정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에서도 드러났듯이 한반도 안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우리 나라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우리의 굳건한 동맹국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당신들의 주장이 낭만적이다.

그런데 이 ‘낭만주의자’들은 여전히 북한을 ‘정부를 참칭(僭稱)하는 반국가 단체’로만 규정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을 그렇게 보는 한, 우리는 우리 동맹국과 북한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질 뿐이다. 우리가 북한을 그렇게 보면서 누구한테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 봐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스스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면서 우리 우방과 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 상황이 바로 지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보체계를 무력할 수는 없다. 문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것인가에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것이 아니라 형법과 국가보안법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안보체계를 형법으로 일원화하자는 것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안보를 유지해왔다는 것은 피 흘려 조국을 지켜온 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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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지금은 분단 상태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 전역을 우리 민족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고 또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지역에 대해 ‘실효적 지배’는 아니지만 ‘역사적 지배’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역사라고 인정받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북한 지역에 대해 지금까지와 같은 조·중 우호 조약 차원의 발언권과는 차원을 달리 한 새로운 발언권을 갖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중국은 이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을 여전히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 단체로만 규정하고 있다. 또 우리의 ‘영원한 우방’은 북한과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를 확대시키려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엉뚱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이미 남북한 체제 경쟁이 끝난 상태인 지금 우리는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적대시만 하고 있고, 우리와 동맹을 굳건히 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북한에게 중국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의 활동 영역은 또다시 통일 신라의 그것과 다름없게 된다. 이는 추상적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이다. 그 정도로 우리 민족은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 같은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 스스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북한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는 선언은 필요하다. 그 선언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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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은 말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왜 지금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냐고. 하지만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 경제가 한반도 공동체, 나아가 동북아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고도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도 한반도 공동체, 동북아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북한을 불법 집단으로 규정한 법률을 그대로 둔 채,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곧 경의선이 연결된다. 대륙으로 태평양으로 향하는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바로 한반도에서 열리고 있다. 이를 위해 개성공단에 우리 기업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남쪽 기업의 실질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4천만이 아닌 7천만이 서로 협력하여 경제적 공동체를 만들어 동북아 공동체의 주역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빨리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우리 나라가 21세기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집권자의 의지에 의해 법 적용이 좌우되지 않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혹시라도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는 세력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가정한다면, 지금 개성 공단에 투자하고 북한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셈이 된다. 또 경의선을 통해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동북아 경제 중심국이 되고자 하는 꿈은 물거품이 된다. 물론 아직은 그 가능성이 낮지만, 언제라도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기업인은 없다. 우리가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조선말 엄중한 국제 정세에서 개혁의 길을 놓치고 망국으로 끝난 우리 선조들과 같은 역사적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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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느 민족에게나 기회를 준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친 민족에게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지금 17대 국회는 역사가 우리 민족에게 준 기회다. 이 기회를 17대 국회 스스로 놓친다면 그 대가는 우리 민족 전체가 안게 된다. 지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그 죄는 국민에, 그리고 역사 앞에 짓는 죄다. 이미 머뭇거리거나 눈치를 볼 시점은 지났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위해 국가보안법은 바로 지금 17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폐지해야 한다. 국회가 국민과 역사, 민족을 위해 스스로의 권능을 제대로 발휘할 시점에 있다. 논의는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는 행동으로 나설 때다.



2004. 11. 24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모임 아침이슬
노영민, 노웅래, 민병두, 선병렬, 우원식, 우윤근, 유기홍, 유승희, 이상민, 이영호, 전병헌, 한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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