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 기름유출사고] 라고 불러야


1월 26일 마음 한구석에 큰 짐으로 남아있던 태안에 다녀왔습니다.

사고가 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기름유출사고로 고통받는
주민들과 바다, 개펄, 그리고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생명들의 아픔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 출판기념회, 당대표 선출 등을 핑계로
함께하지 못한 것을 이 기회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태안 사고 현장에 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국민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원유로 시커멓
게 뒤덮여 있던 파도리 해수욕장은 이미 기본적인 기름제거
를 통해서 처참한 초기의 모습은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1차
기름 제거작업을 진행한 자원봉사 행렬에 다시 한번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위틈에 들어있는 기름찌꺼기와 이미 돌에 스며들어
닦이지 않는 기름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
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해안가는 아직도 1차 방제작업조차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걸어들어갈
 수 없는 해안가의 작업을 위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했던 바닷가 산들이 새로운 길을 내는 작업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해안이 이러할 진대 사람이 살지 않거나 한 두 가구만이 살고
있는 섬들의 상황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발생한 기름유출사고 중 최대였던 1995년 여수 해안
의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의 기름이 아직도 인근 섬들에서 발견
되는 것을 볼 때, 씨프린스호 유출량의 두 배가 넘는 10,810톤
의 기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짐작
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행렬이 생태계의
회복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나눔과 봉사가 서해안의 주민들과 생태계
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동적인 자원봉사 행렬과 달리 사고의 실질적 책임을 가
진 기업들의 태도는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사고의 책임은 누구도 지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고 경위를 살
펴보면 삼성중공업의 예인선과 현대오일뱅크의 기름을 선적한
허베이 스피릿호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도, 기업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태안에 살고있는 주민들은 사고의 충격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
로 자살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삼성과 현대 측은 보상금을
줄이기 위한 주판알만 튀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몰염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이름짓기를 새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1995년 발생한 여수의 씨프린스호 사건을 “여수 기름유출사고”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이번 사고도 “삼성-현대 기름유출사고”라고 이름
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이름이 고정되면,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연스럽게 잊혀지고 피해지역인 태안만
그 나쁜 이미지로 인한 오명을 벗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고의 책임이 분명한 삼성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의 반성과 자각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삼성-현대 기름유출사고”라고 불리우는
것이 맞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아닌 삼성-현대 기름유출사고로
고쳐 부르는 운동을 열심히 진행해야 합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이름 고쳐부르기가 시작되면 조만간 언론도 수정
된 명칭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대기업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법원의 공식적인 판결이
없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식의 변명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로 고통받는 태안과 서해안 지역
의 주민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또한 차비와 식대까지 내면서도 흔쾌히
자원봉사에 함께 참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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