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김한 선생, 그의 가정

저의 외조부 김한선생이 김상옥의혈단 의거로 감옥을 사는 동안 가족의 삶을 동아일보가 취재를 하여 기사를 썼습니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이 얼마나 곤궁하게 살며 어려움을 겪었는지, 저는 읽을 때 마다 가슴을 쓸어 내리곤 했습니다.
조선 말에 탁지부 주사라는 벼슬을 하고 변호사까지 된 외조부의 부인인 할머니가 고무공장을 다니는 사연은 그 시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중 가장 어린애가 올해 99세된 저의 어머니입니다.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 그의 가정>

▲ 김한 선생의 가정 형편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 (1925년 4월 1일자)


  (중략) 동아일보에 우리 집 사정이 자세히 실린 일이었다. 신문에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이 구속된 후에 어렵게 살고 있는 살림살이가 자세하게 실리면서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전해졌다. 아버지의 동지 분들이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도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대우를 해 주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 계셔도 감옥에 계셔도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 때 우리 집의 형편을 1925년 4월 1일자 동아일보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김한씨의 가정: 눈물에 어린 외로운 가정

     ○ 제작년 뜨거운 볕이 들을 녹일 듯한 여름에 서울을 비롯하여 조선 천지가 뒤끓은 의열단사건이 터지자 거기 연루자로 잡혀 들어가 5년이라는 턱없는 징역의 선고를 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는 김한의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중략) 지금 그 가족에는 괴로운 세상에 온갖 쓴맛을 맛본 어머니 李氏가 계씬데 금년에 예순 여덟이라고 합니다. 머리카락은 저승사자의 숨길같이 희긋희긋하나 아직도 정정하야 젊었을 때부터 곱던 그림자가 아련히 나타나며 상냥한 성질은 누구에게든지 다정하게 보입니다.

     ○ 공규를 홀로 지키고 있는 부인 裴氏는 남편보다 한해 아래로 금년에 서른 여덟인데 원정(元貞, 一四)와 례정(禮貞, 七)의 두 어린 딸을 위로로 삼고 있으며, 그 밖에 식구로는 김씨의 삼촌 되시는 예순이 넘으신 내외가 같이 살고 있다.


  ● 외로운 네 식구: 살기 애쓰는 裵氏부인

     ○ 김한씨가 하루아침 뜻하지 아닌 길로 잡혀간 이후 네 식구는 의지할 곳 없는 신세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裵氏부인은 연약한 체질인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사식 차입, 늙으신 어머님을 공궤하기 위하여 집에서 한 십리나 되는 룡산대륙 고무공장에 작년 정월부터 다니기 시작하야 하루 동안 고무신 한 개에 오천 원이나 육천 원 하는 것을 만들어 주고 한 달에 십 원이나 조금 더 되는 돈을 얻어 겨우겨우 살림을 유지하느라고 아침 여섯시에 집을 나가 밤 일곱 시에야 돌아옵니다.
        이렇게 남자 대신으로 몸에 겨운 노동을 하는 부인의 몸이 점점 쇠약하여져서 갸름하고 고웁게 생긴 얼굴에는 온갖 고생을 나타내는 광대뼈가 나오고 눈은 기운에 지쳐 할금하게 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와 같이 쓰린 세상을 악전고투하며 나아가는 부인은 먼 용산을 오고갈 적에 외로운 신세와 추운 감방에서 콩밥을 먹고 있는 남편의 신세 또는 늙으신 어머님의 아들 그리는 정성, 어린 딸들의 아버지 찾는 소리를 연상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매일 
常事(상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 늙으신 어머님: 나어린 두 따님

     ○ 늙으신 어머님은 딸처럼 사랑하는 며느리를 그 괴로운 밥벌이를 시키며 자기는 늙은 몸임에도 돌보지 않고 조석으로 조밥을 지으며 며 며누리아 어린 손주들의 뒷바라지를 하십니다. 이 불쌍한 모습을 가엾이 여겨 공덕리 소학교에서는 무료로 작은 딸 례정이를 공부시키는데 금년에 아홉 살입니다. 이 작은 따님은 가끔가끔 아버지를 부르며 소리 내어 우는 때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큰따님 원정이는 아버님 김한씨가 제일 귀여워하는 딸인데 이화학교 보통과 6학년에 다닙니다. 그 어머님과 부인은 두 달에 한 번씩 하는 면회와 편지를 유일한 낙으로 어서어서 날과 밤이 지나서 출소하는 날을 기다리는데 김한씨는 지난해 동지달에 면회한 후로는 박렬 사건의 증인으로 동경으로 정월에 간 후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來月(다음 달)쯤은 조선으로 나오리라 하여 그 가족은 날마다 어서 돌아와 면회하기를 고대고대 하는 중입니다.


  ● 먹는 것이 조밥: 겨울에도 냉돌방에서

     ○ 조석을 조밥으로 호구하여 가는 중인데 밤에는 조그마한 사기 등잔에 깜박깜박하는 실불이 겨우 사람 얼굴에 비쳐 희미하게 알아볼 뿐이요, 낡아서 쓰러지는 방은 항상 냉돌입니다. 그 어머니는 기자를 향하여「이렇게 궁한 생활을 하는 우리를 찾아 주시니 고맙소이다. 이 늙은 몸이 그때까지 앉아서 아들을 볼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젊은 며느리의 불쌍한 정경을 보아 하루라도 더 살아있어야 하겠습니다. 때때로 내 가슴이 미여지고 터지는 때가 많으나 참고 참습니다. 어린 소녀의 아비 찾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원수의 세상을 저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하며 늙어 주름진 얼굴에 슬픈 빛을 띄며 눈이 그렁그렁하여 이야기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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