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의원 이산가족 상봉기 <4부>

 이 글은 17, 19대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의 이산가족 상봉기를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저서 '어머니의 강'에도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4부>


10월 30일 첫 번째 상봉

오후 3시부터 상봉행사를 갖기로 되어 있어서 숙소인 외금강호텔에서 서둘러 내려왔습니다.

남북 간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져 있는 관계로 상봉단은 남측 CIQ와 북측 CIQ를 거치는 동안 전체적으로 잔뜩 긴장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출발한 터라 어머니는 몹시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도 면회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어머니의 얼굴엔 긴장보다는 숨길 수 없는 짙은 기쁨이 배어 있습니다.

면회소로 들어가 우리 자리인 74번 테이블을 찾으니 이미 기자들이 먼저 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3시가 조금 넘어서자 북측 상봉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아! 60년 만에 처음 만나는 누나!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태어난 나로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분이지만, 만남을 앞두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입니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떨어지고 졸지에 고아가 된 누님이 얼마나 애절한 세월을 보냈는지,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여덟 살 동생 덕혜 누님과 둘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역경을 헤쳐 왔는지 3일간의 짧은 만남으로 다 들을 수는 없겠지만 흔적들이라도 찾아 그 안타까웠던 마음을 함께 느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나도 이렇게 떨리고 흥분되는데 어머니는 어떠실까 싶어 곁눈으로 가만히 어머니의 얼굴을 살펴봅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무표정하게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오히려 그 심정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 북측 상봉단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기, 정혜다!”

영식 형님은 낮은 목소리로 정혜 누님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더니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이게 혈육이란 것인가 봅니다.

정혜 누님은 기자단 중 ‘우리 가족 전담 마크맨’인 내일신문 조승호 기자와 함께 오고 있었습니다.

정혜 누님이 엄마 앞에, 그리고 형제 앞에 환한 얼굴로 다가옵니다. 6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모녀간의 재회는 서로 끌어안으며 시작되었습니다.

상봉장 여기저기서 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60년만의 재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습니다. 상봉장에는 이제 막 만난 가족들이 끌어안고, 볼을 부비고, 울며 60년간 맺힌 한을 쏟아 내느라 어수선하기 그지없습니다.

잠깐 어머니와 영식 형님을 번갈아 끌어안은 누님은 “우리 울지 맙시다.” 하며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은 훈장과 각종 표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붉은 천 위에 한눈에 보아도 호화롭게 보이는 각종 훈장 2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천을 펼치면서 정혜 누님은 ‘나는 이악스러울 만큼 열심히 살아 이렇게 인정을 받을 정도로 훌륭하게 되었다’는 듯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 표정만으로도 부모와 창졸간에 헤어진 정혜, 덕혜 누님이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많은 부분 해결되고 있었습니다.

누님은 소아리중학교 5년, 재령경제전문학교 4년을 마치고 다시 해주공업대학에서 4년 6개월 더 공부를 한 다음, 지금은 연안군 직매점 지배인으로 25년간이나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은행에도 다녔다고 설명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봅니다. 한마디로 차돌처럼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는 누님.

누님은 준비해 온 가족사진을 꺼내 이미 명을 달리한 남편과 2남 2녀의 아들딸, 그리고 손주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해 나갑니다. 아울러 둘째 덕혜 누님은 황해도 재령에서 73세의 남편과 2남 3녀의 아이들을 두고 역시 잘 살고 있다고 전합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두 누님 모두 잘 살고 계시다니…….

정혜 누님은 자나 깨나 한시도 아버지, 어머니, 영식 오빠를 잊은 적이 없다면서 눈물 속에서 말을 이어 갑니다. 처음에는 ‘우리 울지 말자’며 감정을 자제하던 누님의 모습이 차츰 어머니를 애절하게 찾던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정혜 누님의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 누님의 손등을 두드려 가며 “너를 만나니 너무너무 좋다.” 하십니다. 두 분은 끌어안고 볼을 비비고 뽀뽀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십니다.

정혜 누님은 절을 드려야 한다며 번쩍 일어나 큰절을 올립니다. 60년 만에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는 정혜 누님의 눈이 다시 충혈됩니다.

누님은 6・25 이후에 태어나 서로 얼굴도 모르는 동생들인 난혜 누이, 천식 형 그리고 나에게도 안부와 하는 일을 차근차근 물으며 혈육을 확인해 갔습니다.

처음 보는 누님이지만 서로 많이 닮아서인지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분명 다른 체제에서 살았고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너무도 길어 생각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역시 누나다’ 싶게 이내 누나로, 동생으로 정답게 손잡고 있는 우리는 누가 뭐래도 형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누나의 손이 몹시 거칩니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정혜누나의 손이 그래도 참 고맙습니다. 이 거친 손으로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었고 자식을 낳아 훌륭하게 가정을 꾸렸으며 1・4후퇴 후에 황해도에 남아 있었던 나이 든 친척들의 뒷바라지까지 도맡았습니다. 젊은이들이 남으로 떠나간 자리를 대신하여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한 누님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정말 그 거친 손이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어느덧 약속된 첫 상봉의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상봉을 중단해 줄 것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 멘트가 5시경에 전해지면서 첫 상봉은 아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북측 상봉단이 퇴장하면서 정혜 누님도 함께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따가 6시부터 저녁을 함께하는 상봉만찬이 있습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첫 상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렇게 힘이 없을 수 없네요. 팔, 다리가 모두 쑤시고 몸살 기운까지 갑자기 밀려옵니다. 나도 이런데 어머니는 오죽하셨을까요.

이렇게 첫 상봉이 끝났습니다.

저녁에는 식사와 술을 한잔 할 수 있답니다.

설렙니다.


60년만에 찍은 가족사진.


정혜 누님과 단 둘이 찰칵. 덕혜 누님과는 언제나 사진을 찍으려나...


<5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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