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기 위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한평생동안 산소통을 곁에 두고 살아가야만 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임성준 군의 모습.

임성준 군은 항상 국회에 올 때면 사진에 있는 모자를 썼다. 어느 날 임성준 군의 어머니는 "왜 국회에 올 때 항상 태극기가 새겨진 이 모자를 쓰니?" 라고 물었다. 그러자 성준이는 대답했다. "대한민국 국회니까...."

성준이가 이렇게 대답한 그 날은 공교롭게도 여당의 보이콧으로 국정조사가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국회에 대한 예를 자신의 방법으로 최대한 갖추고 방문한 성준이를 정부여당은 그렇게 하대하고 외면했다.


원인 모를 질병의 시작

지난 2002년, 은평구에 사는 한 어린이가 감기 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했고, 이내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더니 결국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괴질환의 초기 증상은 감기와 같이 기침이 심해지는 정도였지만, 이내 폐가 점점 굳는 폐섬유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증상으로 유아와 어린이들이 사망하기 시작하자, 2006년 최초로 이 괴질환이 대한소아과학회에 논문 형식으로 보고되었습니다.


2008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유사한 케이스로 2008년 7월까지 사망한 사망자는 36명, 평균 발병 나이는 26개월이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되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1년,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산모들의 입원이 폭증했습니다. 공통점은 6~7가지의 약을 투여해도 증상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는 점과, 별다른 호전 없이 약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괴질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서울아산병원의 의사들은 질병관리본부에 다시 한 번 신고하며 유아, 어린이 뿐 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치명적인 질환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마찬가지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이 괴질환이 가족단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공개되었습니다.


밝혀진 원인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31일,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습기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시기, 산모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시기와 가습기살균제의 판매 시기가 겹친 것이었습니다. 주로 '옥시'에서 제조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성분이었던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 가습기 속의 미세한 물입자를 타고 분해되어 폐로 유입되어 폐의 섬유화를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보이며 너무 힘들어 해서, 방이 건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습기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증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저는 그 곳에서도 아이가 낫기만을 바라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가습기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제 손으로 우리 아이를 죽인 것이었습니다. 남편도 미세분자학을 공부한 엘리트였지만 저도, 남편도 손을 써보지 못한 채 아이를 떠나보냈습니다. 

-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위 구성 중, 우원식 의원실로 걸려온 전화



외로운 싸움의 시작

2011년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들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잘못되었고,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은 증명되지 않았다며 일체의 보상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는 서울대학교의 연구팀을 통해 자사의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시험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의 소관 부처가 없다는 이유로 떠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부처도 책임 있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제조사와 소송할 문제라며 떠넘겼고, 제조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하는 제품이 아니라며 환경부로 떠넘겼고, 환경부는 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맡지 않았습니다.


뒤늦은 검찰 조사의 시작

2016년 1월 말, 검찰은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검찰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PB상품을 판매한 기업과 옥시 등을 상대로 전방위 수사를 통해 압박했습니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5년이 지난 뒤에야 사과와 함께 보상 조치를 발표했지만, 옥시는 달랐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보고서를 통해 "자사 제품의 유해성이 확인된 바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폐손상의 원인이 '황사' 때문이라는 등의 77쪽에 달하는 반박문을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검찰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인용한 서울대학교의 시험보고서가 조작된 정황을 발견한 것입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논리를 반박할만한 실험 결과는 철저하게 은폐되었는데,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임신한 쥐 15마리를 가습기살균제에 노출시키자 13마리의 새끼가 뱃속에서 폐사했다.
원료물질을 공급한 SK케미칼은 옥시레킷벤키저에 공급할 당시 "인체에 유해할 수 있음"을 설명했으나 옥시레킷벤키저는 이를 은폐했다.


결국 검찰에 고발된 옥시레킷벤키저는 지난해 5월 21일, 피해자 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배상안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언급되지 않았고, 언론 카메라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보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습니다.

언론을 향해 사과하고 있는 아타 샤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에게 항의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나눠진 등급, 소외된 사람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하여 피해자들을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분류했습니다. 사망하였거나 심각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나타내는 1단계부터 경미한 손상일 뿐이라는 4단계로 피해자들은 나뉘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1~2단계 피해자들이 자사 제품을 주로 이용했으므로 이들에게만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3~4단계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에 19대 국회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을 발의해 피해자를 고르게 구제하고자 하였으나 임기 내에 법이 통과되지 못해 결국 임기만료폐기되었고, 20대 국회가 시작되고 나서야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위"가 만들어지면서 피해구제특별법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는 법입니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의 결과물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3법이 성안되었고,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5년 간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싸워온 성과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의 주요 내용은,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구제급여를 신설하고,

  • 구제급여를 받을 수 없는 피해자(3~4단계)를 위해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인 SK케미칼,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등이 부담하는 총 2천억 원 규모의 특별구제계정을 환경부에 설치하고,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원회,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 가습기살균제종합지원센터 등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고는 2017년 현재 피해접수자 5,341명, 사망자는 1,112명에 이르는 단일 사건으로는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들과 산모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을 빼앗긴 채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은 이런 재난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더 이상 사랑하는 아이와 가족을 내 손으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한 법입니다. 부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으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더이상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국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특위의 영국 방문에 동행했던 임성준 군의 어머니는 옥시레킷벤키저 본사의 대표가 영상통화를 통해 임성준 군에게 사과하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항상 꿋꿋하게 잘 버티며 도와주었던 아이였어요. 엄마가 울 때면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던 착한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영국 옥시 본사의 대표가 영상통화로 미안하다고 하자 펑펑 우는거예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이제 중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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