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는 현장실습생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지난 1월 23일, 전북의 한 저수지에서 19살의 나이로 추정되는 여성의 익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그 여성은 LG U+의 협력업체인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현장실습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도대체 왜 현장실습생들의 사망과 자살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요?


'아빠, 나 콜 수 못채웠어.'

학생은 콜센터 내에서 고객의 계약 해지를 방어하고, 재계약을 유도하는 '해지방어팀' 소속이었습니다. 당연히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해 계약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상대하려고 하니, 심적 스트레스가 상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객에게 욕설과 폭언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해지를 막지 못할 때마다 회사에서도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현장실습'이라는 명분으로 회사에 들어와 있을 뿐인 학생에게, 회사는 막무가내식으로 계약 해지 방어를 종용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열아홉 살의 '현장실습생'이었다

2011년 12월, 19세 현장실습생 A군은 회사의 과도한 노동시간 강요에 시달리다가 뇌출혈이 발생해 뇌사 상태에 빠졌고, 2014년 1월 대기업 유통회사에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하던 19세 B군 역시 사내의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 폭행에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2014년 2월에는 19세 C군이 근로계약에 위반되는 야간 근무 도중 폭설로 인해 공장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이들이 참여했던 것은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학생들이 현장 경험을 쌓고 취업하기 위해 준비과정으로 참여하는 '참여형 현장실습'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에서야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현장실습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일학습병행제'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노동자 신분으로 보호하겠다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전공과 관계 없이 떠밀려지는 현장실습

올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실습생의 꿈은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오리훈제고기와 함께 김치를 볶아 만드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까지 욕설과 폭언, 압박에 시달리며 일했던 곳은, 그의 꿈과는 전혀 상관 없는 통신사의 콜센터였습니다.

왜 현장실습생 본인의 의지나 전공과 상관 없이 떠밀려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취업률에 따라 교육 예산이 배정되니까 오히려 회사가 갑(甲)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예산을 어떻게든 배정받기 위해 학생들의 전공과 무관한 직종이라도 학생들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인 것이다. 결국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현장실습생 노동인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모습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 관련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전공과 전혀 관계 없이 떠밀려지는 현장실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장실습생으로서 처우도 정직원보다 못하니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를 두고 '단순 변심'이라고 분류하고 있습니다. 달리 설명할 표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보다는 '취업률 70% 달성'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 달성에 목을 메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부처일까요?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2014년 2월,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 폭설로 인해 붕괴한 지붕으로 인해 사망한 현장실습생의 유가족 <뉴시스>


부당노동행위 근절이 선행되어야

현장실습생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도한 노동시간 강요, 폭언과 욕설, 실적 압박 등은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입니다. 그나마 현장실습생들을 법 안의 테두리에서 보호해야 하는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생들이 배치된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근록감독관을 본 적이 없다'는 학생의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근로감독이 매우 부실한 상황입니다. 근로감독관의 인원이 필요한 정원보다 매우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사망한 모든 현장실습생들은 부당노동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불행하게도 사망했습니다. 일학습병행제 정착 시도에 앞서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는 시도를 선행하여야 합니다.


일했던 부서는 'SAVE팀', 하지만 정작 본인은...

현장실습생이 죽기 직전까지 일했던 콜센터 부서의 별칭은 'SAVE팀'이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구원, 구조한다는 의미를 가진 SAVE팀에서 일한 그를 정작 부서는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해당 부서가 원래 격무 수준까지는 아니었다며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사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한밤중 전화통화에서 젖은 목소리로 "죽겠다. 죽고 싶다. 더는 못 견디겠다. 고객들이 '쌍욕'하는 것도 힘들고 계약해지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위에서 갈구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말했던 학생의 죽음 앞에 회사는 그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다른 이유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요? 회사는 연관성을 부인하며 침묵하고 있을 뿐입니다.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단순히 취업률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을 굳이 가지 않아도, 학벌과 스펙에 치이는 불합리한 경쟁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현장실습제도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학교의 예산 걱정, 취업률 제고라는 정부 정책에 떠밀려 목숨을 끊는 학생들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진정으로 계발하고 해당 분야로 올바르게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진로 교육과 더불어 직업 선택의 자유, 현장실습을 실시할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부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실습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입니다.


19살의 나이에 원치 않았던 일을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해 강요당하며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을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하늘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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