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10.22) 전문성 없는 ‘상담’은 일방적 ‘설교’일 뿐

전문성 없는 ‘상담’은 일방적 ‘설교’일 뿐





등록 : 2012.10.22 13:42


고등학교 현직교사인 전정환씨가 지난 10월1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문상담교사 증원을 주장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현직교사 6주 교육만 받고 상담교사로 
1000명 늘린다더니 내년 신규임용은 ‘0’

고등학교 교사인 ㄱ씨는 3년차 전문상담교사다. 이전까지는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밤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5시간 이상 공부했다. 젊은 교사의 경우 1년 정도면 되겠지만 나이를 먹어서인지 예전 같지 않았다. 처음부터 쭉 보다가 뒷부분에 가면 앞의 내용을 까먹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봤다. 임용고시를 공부한 지 3년이 걸려서야 임용고시를 통과했다.

그는 “소외된 아이들, 학교폭력으로 피해받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우는 걸 보며 상담교사를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고 말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게 많았다. 상담 전공 분야가 8개나 된다는 것, 상담에는 전문적 이론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사실, 그는 교사 경력이 24년이나 된 베테랑 교사다.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임용 과정을 보면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현직 교사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각각 3주에 걸쳐 총 6주간 교육만 받으면 전문상담교사로 전직할 수 있다.

하지만 ㄱ교사는 이론적 배경이 없이 상담을 하면 단순한 면담에 그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규과정을 거쳐 상담의 기본부터 심층적인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배웠다. 실제로 주변에 ‘교포’(학교에서 교감 포기 교사를 가리키는 말)들을 보면 상당수가 상담교사를 많이 한다. 50대 정도 되면 영어 발음도 달리고 수업 자체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ㄱ교사는 “6주 교육만 받은 교포들을 상담실에 앉혀 놓는 것은 외과의사였던 사람이 교육만 받고 정신과 의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상담은 공감적 이해와 전문적인 상담기법이 반드시 필요한데, 현장에서 기본적인 상담마인드도 없이 설교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과를 가르치기 힘들어서 상담으로 돌렸는데, 실제 해보니 쉽지가 않다며 후회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6일, 정부는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년도에 전문상담교사를 1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달 수립된 ‘시도별 2013년도 전문상담교사 가배정 현황’을 보면 증원은 ‘0’명이다. 또 지난 9월 충원된 500명의 전문상담교사 가운데 절반인 250명이 현직에서 전직한 교사들이다. 교과부의 말바꾸기 정책과 임시방편식 대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의 우원식 의원(민주통합당)은 “상담이라는 게 전문 직종이기 때문에 그에 맞게 공부를 해야 한다. 현직 전직이 경력이 있다지만 아이들이 세대 차이 많이 나는 부모뻘 되는 사람에게 말하기는 힘들다. 신규 임용을 해서 새로운 상담기법을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우 의원은 “교과부에서 전문상담교사의 수가 부족한 걸 인정하고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견은 없는데, 예산이 깎였다고 한다. 지난번 약속한 1000명 충원은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 정부는 예산을 더 투자하지 않고 학생들을 옥죄는 강경책에만 치중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우 의원은 현재 전문상담교사들이 요구하는 한 학교당 한명의 전문상담교사 배치안에 대해서도 “당연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상담은 그 아이의 성장과정을 보며 꼼꼼히 해야 하는데, 이게 계약직 상담사나 전문순회교사로는 불가능하다. 최소 한 학교당 1명씩으로 하고 학생 수에 따라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이번 9월에 전문상담교사 500명을 확충했고, 현재도 전문상담교사나 전문상담인력 확충을 위해 관계부처와 계속 협의중”이라며 “인원을 늘리는 건 우리 부처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도 내년에 사립학교의 경우 전문상담교사 배치 계획도 있고 지속적으로 전문상담을 할 수 있는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얘기한 ㄱ교사는 하루에 많게는 20명까지 상담한다. 일반 교과는 여러 명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아이들 실력이 점수에 따라 그래프처럼 눈에 보였다. 이에 반해 상담은 일대일로 비밀을 지키면서 긴밀하고 조심스레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더디다. 하루아침에 10단계의 아이가 1단계가 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면담을 진행하면서 아이가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변했다. 내 과목만 열심히 가르쳐서 학습도달목표가 어느 정도 되면 끝났다고 생각했던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때로 학교폭력 사건이 터지면 내 탓이 아닐까 책임감도 느끼고 심적인 부담도 크다.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사회에 나가서도 행복한 삶을 꾸려나갈까 고민한다.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음악, 스포츠에도 관심을 많이 갖는다.

전문상담교사의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이들로 충원할 것인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ㄱ교사는 “현직 전직으로 전문상담교사를 늘리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밖에 안 된다. 임용에는 반드시 임용고사라는 최소한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최소 1차 전공과목이라도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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