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어림없는 말이다. 맑은 물에도 고기는 산다. 바닥감돌고기, 가시고기, 버들치, 버들개 같은 물고기는 자갈이 깔린 아주 ‘맑은 물에만’ 산다. 그렇지만 잉어나 붕어, 메기 같은 고기는 3급수에서 산다고? 물론 그렇다. 그 물고기들은 1급수에서는 당연하고 ‘3급수에서도’ 산다. 3급수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산하의 모든 물이 1급수였던, 어떤 하천 물이라도 그냥 떠먹어도 되던 그런 먼 옛날에도 잉어나 붕어는 살고 있었으니까.

그럼 왜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그것은 바닥의 돌까지 선명히 보이는 아주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고, 또 거기에 사는 버들치나 버들개 보다는 바닥이 진흙이라 탁하게 보이는 물에서 사는 잉어나 붕어를 사람들이 즐겨먹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의 식성은 물고기의 생활 환경에 오해를 갖게 했다.

어느 정도 물이 더러워져도 사람들이 즐겨먹는 잉어나 붕어는 잡혔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하게 물이 더러워져도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잉어나 붕어는 여전히 잡혔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잉어나 붕어가 떼로 죽어 떠오르자 사람들은 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내 오염된 물 때문에 등이 굽은 물고기가 나타나자 이제는 더 이상 물이 더러워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감돌고기나 가시고기, 버들개나 버들치뿐 아니라 약간은 더러운 물에도 살 수 있는 갈녀니나 피라미조차 우리 곁에서 모두 떠난 뒤였다.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는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하나씩 우리 곁을 떠났던 것이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였다. 다만 더러워진 물에도 고기가 살 수 있을 뿐이었다.

더러워진 물에 사는 물고기를 보면서 맑은 물에 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동안 사라진 것은 감돌고기나 가시고기뿐만이 아니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 우리는 원칙을 지키고 부조리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사람이 좀 원칙도 외면하고 절차도 무시해야 친구도 사귀고 이웃도 사귀면서 무리 없이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규칙과 절차도 어기고 원칙도 가끔은 포기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그러니 남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꼿꼿하게 살면 이웃도 없고 친구도 없고 세상 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말은 원칙과 절차를 귀찮게 여겼던 우리 자신의 자기 변명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게 변명하면서 조금씩 부조리와 타협하면서 어지간한 부조리는 부조리로 느끼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잉어와 붕어가 잡히는 동안은 물이 더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 스스로 조금씩 부조리에 익숙해지는 동안 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꼿꼿한 삶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떠났다. 잉어와 붕어조차 살 수 없는 물이 되었을 때 맑은 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듯이, 마침내 세상이 온통 부조리가 가득하게 되자 원칙과 정당한 절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허리 굽은 물고기를 보고서야 맑은 물의 소중함을 깨달았듯이 세상이 온통 불법과 탈법으로 원칙이 무너져 내려 더 이상 살기 힘들게 되자, 우리는 맑고 깨끗한 사회에서 우리 스스로가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편리하다고 깨달았다.

하지만 버들치나 가시고기가 지금 하천에서 살 수 없게 되었듯이 우리 사회는 부조리를 거부하고 원칙을 지키고 살기가 매우 힘든 사회가 되어 버렸다. 가시고기를 찾기 힘들 듯이 꼿꼿하게 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사는 사람을 이제는 우리 곁에서 찾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맑은 물에서는 살 수 없는, 탁하고 흐린 물에서만 사는 그런 사람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원칙과 절차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놀지 않는다는 것은 부조리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우리들의 변명일 뿐이었다. 이것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뒤에 얻은 진실이다.

우리는 이제 숱한 불법과 탈법 속에서 우리가 얼마만큼 병들었지를 알게 되면서 원칙과 절차를 지키면서도 이웃과 함께 웃고 즐기면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

사람은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에서 원칙과 절차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물고기는 원래가 맑은 물에서 살지만 더러워진 물에도 사는 물고기가 일부 있을 뿐인 것처럼.

이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맑은 물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듯이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이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맑고 깨끗한 사회를 찾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감돌고기와 가시고기가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다시 돌아 올 수 없듯이.


투명사회실천협의회 집행위원
국회 투명사회협약실천특별위원 간사
우 원 식


[위 글은 투명사회실천협의회 기관지 “다함께 더맑게” 9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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