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천성산 문제를 ‘인간의 생명’이라는 가치로 보기를 기대한다


- 지율스님이 생명을 지켜주시길 기원하며 -

지율스님이 단식을 시작한지 100일이 됩니다. 의학적으로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누구도 결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지만, 차마 입에 담기에 몸이 떨리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예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국정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 국회의원으로 저는 지금 매우 참담합니다. 그리고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그동안 솔직히 지율스님의 큰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반문과 고뇌의 시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현행 환경영향평가제도의 여러 가지 결함으로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행 법적․절차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해결 역시 법적·절차적 과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전략환경영향 평가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은 있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천성산 공사는 몇 차례에 걸친 공사 중단도 있었고, 법원의 판결도 있었기에 국책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의 절차적인 정당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대신할 그 무엇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생명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예산이 집행되는 국가의 국책사업이 이런 식으로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법과 제도에 보장된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한 주요정책 추진사업을 변경하라는 것은 무리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진행되고 있는 단식 앞에 논리적 설득력은 무의미합니다. 또 과거 개발 논리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발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적 시각 역시 지금 논란의 핵심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대신할 그 무엇도 없다는 단순한 명제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은 지율스님이라는 개인의 생명과 천성산 터널 발파 공사 3개월 중단,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생명에는 대안이 없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지율스님 개인의 생명의 문제는 이제 한 개인적 차원의 생명을 뛰어넘어 개발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개발이어야 한다는 ‘공동체적 생명’이 되었습니다. 한 종교인이었던 지율 스님은 이제 고유명사 지율이 아닙니다. 지율은 이제 자연이, 한 지역의 생태계 역시 인간의 목숨에 버금가는 가치가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보통명사가 되었습니다. 지율 스님은 이제 지율 스님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인간의 생명만큼 자연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다가 올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은 우리 사회가 자연의 위대한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 한 인간의 생명까지 지불해야 하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사회라는 사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중단하면 공기가 얼마 걸리고, 비용이 얼마 들고, 정부정책이 일관성을 잃을 것이라는 주장, 일단 접어 두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습니다. 오히려 3개월이라는 시간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지불하지 않고도 자연의 소중함을 지켜내면서 개발과 보존이 공존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자라나는 2세에게 알릴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개발체제가 아직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또 지율스님께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생명을 놓지 않고 지금 삶으로 돌아오신다고 해도 지율스님은 이미 천성산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천성산은 이제 우리가 사는 모든 동네의 뒷산에 우뚝 서 있게 되었습니다.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은 모든 이들 가슴속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천성산과 그 속에 사는 도롱뇽이 곧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을 밝히고 있는 촛불들을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천성산이, 그리고 한 지역의 생태계가 인간의 생명에 버금가는 가치를 가졌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주셔야 합니다.

오히려 스님의 생명이 멈추게 될 때, 우리에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대신 분노와 울분에 쌓인 격함이 대신하거나 갈등과 미움이 우리의 공동체를 휩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율스님의 생명운동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이제 생명을 끊음으로 자연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지킴으로 자연의 생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중생의 심정으로 스님께서 남아 있는 이들에게 그토록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시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5. 2. 3
우 원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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