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법, 왜 나는 찬성하였는가!


지난 5월 3일 과거사법 표결이 끝 난 후 참으로 어려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저의 찬성 표결에 대한 주변의 비판도 비판이지만 제가 함께 가고자 하는 많은 주변의 동지들과 다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를 매우 무겁게 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개혁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원내 부대표라는 직책 때문에 그렇게 한 측면은 없는가?’
‘아니면 나도 기득권에 들어가 편하게 살기를 원하기 시작했는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 사무실에서, 차안에서, 그리고 밤을 하얗게 지새워 가며 무수히 반문해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결론은 결코 그 어느 것도 ‘아니다’였습니다.
작년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을 관철하기 위한 240시간 의총 때의 그 우원식이 지금의 우원식이고, 또한 나는 앞으로도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살아 갈 것이라는 자신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과거사법에 대한 저의 찬성 표결도 결코 반개혁적인 잘못이 아니라는 점과 우리 사회의 수구세력과 맞서 개혁을 앞당기는데 결코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저의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 했습니다.

법이 매우 미흡합니다. 그러나......,
그렇습니다.
이번에 통과한 법이 매우 미흡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이 저지른 인권탄압, 폭력, 테러, 의문사 등’을 포함시킴으로서 역사적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진실 규명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과거사 청산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완벽하게 반영한 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법의 제정 목적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 행위를 조사하자는 것임을 감안 할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독립운동세력, 민주화 운동세력, 통일운동세력이 과거에 역사적으로 잘못을 한 적도 없지만 혹시 일부에서 폭력 등 불법적인 행위가 있다고 해도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처벌받지 않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히려 과잉 진압, 고문 등으로 조작되어 과잉 처벌된 사례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 필요도 없지요.

그렇지만 저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국가권력과 정보망, 불법적 탄압 수단을 통해 얼마나 많은 민주․통일인사를, 독립운동가를, 무고한 국민을 고문하고, 죽이고, 암매장 해
오지 않았습니까.


법 문안으로 비슷하게 써 놓았다고 우리의 과거와 저들의 과거가 어디 같습니까.
법에 그렇게 규정을 했다고 해도 우리의 과거에 대해 조사할 사건이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저의 기본적인 판단은 이랬습니다.
그들이 조사하자고 주장하는 용공․좌경사건들은 고문․조작 과잉처벌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진실규명을 해야 할 사건들입니다.


작년에 국회에서 벌어졌던 이철우 전의원 간첩사건을 예로 들어봅시다.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이철우 간첩이 국회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철우 전의원의 과거의 상처를 다시 건드려 몹시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 중부지역당 사건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이었는지, 이철우 전의원이 얼마나 많은 고문을 당했고, 어떻게 사건이 조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오히려 안타까웠던 것은 그때 과거사 법이 없어서 중부지역당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것이지요.

저는 이 법 조항에 대해 기분은 몹시 나쁘지만 그리 걱정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옳지 않은 조항이 왜 들어갔는가?
싸워서라도 없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없애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국회라는 엄연한 조건, 120석이 훨씬 넘는 반대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맘대로만 하기 어려웠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고진화 의원의 과거사 법을 반대하는 본회의장 발언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고진화 의원이 말하는 내용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이 그런 정당이라는 것을 모르고 들어갔습니까? 한나라당을 상대로 하여서는 ‘최고가 아닌 차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고민을 야합이라고 질타하는 한나라당의 고진화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한나라당에게 속된 말로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진화 의원은 그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의 차이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런 국회의 조건에서 국가보안법은 타협하지 않으면서 왜 과거사법은 타협하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법은 완전히 조건이 다른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과거 냉전시대,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사용되었던 몹시 위험한 괴물이지만 생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입법으로 타협을 하면 다 죽어가는 법에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폐지가 어려우면 조건을 더 성숙시켜 확실히 없애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사법은 다릅니다. 먼저 과거사 조사의 시작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과거사법에 해당되는 우리의 과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많은 증거들이 과거 속으로 묻히게 됩니다. 어쩌면 과거를 밝히는 일은 지난 권위주의 정권이 끝난 김대중 정권이 이미 시작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김종필과 손잡고 출발했기에 그때는 손도 대지 못하다 이제야 겨우 시작하는, 이미 매우 출발이 늦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만족할 만한 상황 속에서 만족 할만한 법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조건 속에서라도, 법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과거사를 밝히는 작업을 출발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 과거사법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탄압받았던 역사 한 건이라도 제대로 밝힐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지금 대치하고 있는 우리사회 수구세력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정부의 여러 기관에서 자신들의 과거사를 밝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에 법적근거를 빨리 만들어 놓는 것이 저는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비록 많이 부족하고 화나는 법이지만 찬성을 한 것입니다. 마치 솔로몬의 재판에서 자기 아이의 손을 놓는 부모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재심사유에 대하여

또 다른 중요한 문제를 짚겠습니다. 진실규명의 범위에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되 재심사유에 해당해야 조사를 한다.’는 조항에 대해 지나치게 조사 범위를 좁혀 놓아 제대로 조사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지적에 대해 저는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5월 5일자) 동아일보의 “과거사법에 미래지향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사설을 인용해 봅시다.
동아일보는 “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도 재조사의 길을 열어준 것은 큰 문제이다. 법원의 재심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그런데 이 법은 위원회의 재조사 여부에 대한 판단권을 줬다. 위원회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확정판결 사건을 재조사하게 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반개혁세력이 갖는 이 법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판단과 정 반대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심사유에 해당해야 재조사를 하지만 재심사유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위원회입니다. 그리고 위원회의 구성은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재조사의 폭에 대해 큰 걱정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참고로 위원회의 구성은 국회 8명, 대통령 4명, 사법부 3명씩 내는데 이 중에 상임위원은 국회 2명, 대통령 2명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국회 8명은 우리당 4명, 한나라당 3명, 비교섭단체 1명이 됩니다. 따라서 상임위원은 3:1이고 비상임까지 모두해서 사법부, 비교섭단체가 모두 수구세력에게 협조적이라고 하더라도(절대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것임) 8:7로 과반은 넘는 조건이 됩니다.

더 지연하기 보다는 미흡하지만 출발이 중요합니다.

저는 미흡하고 화도 나지만 그래도 찬성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당장 출발할 수 있겠다! 그것도 의미 있게 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앞으로 중요한 것은 훌륭한 위원들을 모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지난 친일청산법 같이 우리 모두의 의지를 다시 모아 보다 나은 법으로 고쳐 나가도록하면 될 것 아닌가!’였습니다. ‘어차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고치는 것이 훨씬 쉬운 작업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라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또 다시 포기하는 것 보다는 지금 이렇게라도 출발하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당내 개혁세력에 대한 소회

그런데 저는 저와 함께 갈 동지들과 같은 판단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몹시 유감입니다. 아니 매우 괴롭습니다. 이 법이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처럼 정말 몹쓸 법이고 당론을 모았음에도 진심으로 함께 가지 못할 누더기 법이었으면 당일 있었던 의총에서 부결시켰어야 했습니다. 표결 결과를 보아도 부결시키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까?

작년 국가보안법 때 당론을 폐지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노력을 했습니까! 또한 대체입법이 제기 되었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강고한 당내 투쟁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한 이유는 국가보안법 폐지로 당론을 모아야 폐지에 반대하는 다른 의원들을 함께 가게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가 하고자 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강경파라는 비난에 맞서 ‘당론 고수파’라고 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어떻습니까!
저의 사회로 문병호 의원의 발제 이원영의원의 보충발제 후 임종인, 유선호, 정청래 의원이 반대의견을 내고, 원혜영, 김부겸 의원이 찬성토론한 후에 정세균 원내대표가 ‘부족하지만 이렇게 가자’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반대한 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에 박수가 있었지요.

저는 여야간의 협상이 당론으로 추인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론으로 정했다고 무조건 당론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또한 의총에서 반대의견을 말해야 본 회의장에서 반대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분들의 반대, 또는 기권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스럽습니다. 당에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분들이 누더기법을 통과시키려는 데도 왜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왜 말씀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해서야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믿습니까!
이렇게 해서야 국가보안법 “폐지”당론을 따르라고 누가 나서서 말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모든 당론에 각자의 양심을 묶자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과거사법과 같이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법에 있어서는 당의 정체성을 모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지, 그 일은 소홀히 하고 각자의 정체성만을 드러내기 위해 따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당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해온 개혁세력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 부분이 과거사법처리 이 후, 가장 안타깝고 힘들고 괴로운 부분입니다.

개혁세력은 이미 문제제기 집단이 아닙니다.
현 정권의 중심세력이고 열린 우리당의 중심세력입니다.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세력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정치세력 중에는 가장 큰 세력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조차, 과정에서도 힘들이지 않고 결정이 되어도 이렇게 쉽게 여겨서야 어느 누구에게 우리가 책임 있는 세력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의 개혁진영에 대해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 사랑하는 저의 조국 대한민국을 책임져야 할, 책임질 수밖에 없는 세력이 열린우리당의 개혁진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자랑스러운 열린우리당의 개혁진영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그 일익을 기꺼이 담당하려고 합니다.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과거사법에 대해 찬성을 했고 미흡하나마 그 출발에 동의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의 정체성을 훼손시킬 만큼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이 미흡한 과거사법의 순항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또 법개정이 필요하면 적극 앞장설 생각입니다.

또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냉전시대의 질곡으로부터 완전히 벋어나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갈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5월 6일
국회의원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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