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3.12) [여적]백지신문

[여적]백지신문

 

36년 전 연세대 대강당 앞에서 학생 4명이 ‘유인물’을 뿌리다가 현장에서 곧바로 경찰에 연행됐다. 연행된 학생 중에는 지금 국회의원인 토목과 2학년생 우원식도 있었다. 긴급조치 9호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라 유인물을 뿌리는 것은 물론 만들려고 예비·음모하거나 받아서 소지하는 것도 징역 1년 이상에 처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뿌려진 것은 아무 내용이 없는 백지였기 때문이다.

당황한 경찰이 백지를 물에 담그고 불에 쬐고 다리미로 다리는 등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무소불위의 긴급조치 9호도 아무 주장도 하지 않은 학생을 처벌할 수는 없었다. 학생들이 연행에 항의하자 경찰이 둘러댄 죄목이 기발했다.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라는 것이었다. 1977년 4월19일 일어난 이른바 ‘연세대 백지선언문 사건’이다. 연세대가 그해 가을 긴급조치 9호하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가두시위에 성공, 대학가의 긴 침묵을 깨뜨리는 출발점이 된 사건이다.

백지는 검열의 결과나 탄압·불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닌다. 무저항의 저항이다. 억울함에 대한 항변, 상대방에 대한 신뢰·회유·협박의 뜻으로도 쓰인다. 백지기사·백지광고·백지동맹·백지수표·백지위임 등이 그런 예다. 침묵시위는 말로 하는 백지시위라고 할 만하다. 대중매체인 신문을 백지로 발행한 사례도 적잖다. 1933년 스페인 빌바오의 한 주간신문이 2·3면의 만화 외에 8개면 모두를 백지로 발행한 기록이 있다. 발행 한 시간 전에 검열당국에 교정쇄를 제출토록 한 데 대해 반항적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제 연세대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가 1면을 백지로 만든 호외를 발행했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에 따른 항의 차원이라고 한다. 국내 대학 신문의 효시이자 78년 역사를 자랑하는 ‘연세춘추’가 ‘경영난’으로 세간의 화제에 오른 것은 희한한 일이다. ‘연세춘추’가 재정난에 빠진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로 이번 학기부터 ‘연세춘추’ 구독료가 등록금과 분리되면서 납부율이 1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세춘추’는 학보의 존재가치는 외면한 채 경영의 잣대만 들이대는 학교 측의 자세를 비판하면서 이는 언론탄압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대학 언론이 처한 현실이 36년 전과 성격은 다르지만 딱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아 씁쓸하다.

신동호 논설위원

입력 : 2013-03-12 21:08:44수정 : 2013-03-12 21: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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