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제 차별금지, 화해와 평화로 이어져야


그때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제 차별금지, 화해와 평화로 이어져야


혜진에게
너를 만난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구나. 학교에서 내준 ‘꿈’에 관한 숙제를 위해 나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왜 너의 꿈을 이야기하는 숙제 때문에 나를 만나야 하는 것인지. 만나고 나니까 다 이해됐다. 너는 정치인이 되는 ‘꿈’을 갖고 있었고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하고 그 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나자고 한 것이었지.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너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너와 같은 맑고 밝게 사는 청소년과 이야기 하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행복이란다. 또 한편으로는 너처럼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는 너희들을 보면 부러움을 갖게 되기도 한단다. 혜진이 아버님 연세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너의 아버님 세대, 우리 세대는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었단다.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혜진이 아버님 세대, 그러니까 우리 세대가 왜 그런 여유가 없었는지, 그리고 그런 세월을 왜 굳이 맑고 밝은 꿈을 꾸며 사는 너에게 이야기하려는지,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편지로 쓰고 싶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더라도 우리는 아무리 불행했던 과거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또 그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너의 세대가 너의 부모님 세대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지.

혜진아, 사람들은 보통 영화와 같은 현실, 소설과 같은 현실을 가끔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현실이 오히려 영화보다도, 소설보다도 더 극적일 때가 많단다. 2002년 월드컵 때를 기억하니? 어떤 영화에서 어떤 소설에서 그런 감동을 그릴 수 있었겠니. 그렇게 현실은 때론 영화나 소설보다도 더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단다.

그런데 혜진아.

어떤 경우에는 현실이 영화나 소설보다도 더 어둡고 암울한 경우도 있단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조지 오웰의 1984년이라는 소설이 있지. 그 소설은 국민 모두가 감시받고 그 어떤 자유로운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없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현실 보다 더 어둡고 암울한 시대가 우리 역사에 있었다는 사실, 이해할 수 있겠니? 너의 아버님이나 우리는 그런 세월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단다.

사람들은 보통 그때를 긴급조치 시절이라고 한다. 긴급조치 시절의 현실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두움의 현실이었지. 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미성년자 입장불가라 네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줄거리는 들어서 알지 않을까. 올드 보이라는 영화, 잘 알지? 그 영화 주인공 오대수는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15년 동안을 닫힌 공간에서 살게 된다. 그 긴 세월을 주인공 오대수는 밖의 세계를 동경하며 살게 되는데, 긴급조치 세월이 바로 그런 세월이었다.

막혀 있었지. 그때는.
자유가 막혀 있었고 민주주의가 막혀있었지. 그때는.

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겠구나. 내가 겪은 한 사건을 이야기하면 좀 더 이해가 빠르겠다. 마침 오늘은 4월 혁명 45주년이기도 하니까. 4.19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자구나. 4.19가 어떤 날인지 너도 학교에서 배워 잘 알겠지?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배경은 4.19 17주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8년 전 이야기란다.

1977년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단다. 지금처럼 그날도 교정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했지. 그러나 나는 그 꽃을 감상할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몇몇 선배 친구와 함께 하얀 백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하얀 종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준 게 무슨 이야기거리냐고? 바로 그래서 이야기 하는 것이란다. 그때, 교정에서 하얀 백지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나와 선배와 친구를 경찰이 바로 잡아 갔단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백지를 나눠줬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던 시절을.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백지를 나눠주던 우리는 신촌역 앞 파출소로 연행되었다. 경찰들은 그 백지를 모두 압수해서 불에 비춰보고 물에 담가보고 다리미를 구해 다려보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지. 그저 백지였을 뿐.

그래서 중간고사 기간이라 공부할 때 연습지로 쓰라고 나눠주었는데 왜 연행했냐고 따져 물었지. 그랬더니 경찰이 뭐라했는지 아니? 참 내. 지금도 생각하면 우습기만 하다. 그때 우리를 조사하던 형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잔소리 마, 죄목은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야”

아직도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지? 그럴 것이다.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지.

아무튼 그때 우리는 백지를 나눠주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단다.

‘오늘은 4.19입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는 왜 4.19인데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을까? 그때는 학교에 경찰들이 상주해 있다가 서넛이 모이기만 해도 무슨 소리를 하나 엿듣던 때였단다. 그리고 누가 4월 혁명을 이야기하면 바로 잡아갔었지.

학생이 학교에서 4월혁명을 이야기하지 못하던 시절, 그때가 바로 긴급조치 시절이란다. 그래서 앞에서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던 것이지.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서 떨리는 손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써야 했던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었지. 자유와 민주주의, 그 이외의 꿈을 갖기에 긴급조치 시절은 너무도 어두었단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찾고자 했던 자유와 민주주의, 이제는 혜진 세대들은 세상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그렇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맑고 밝게 사는 혜진 세대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단다. 그것은 긴급조치 시절, 우리들이 그렇게 외쳤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제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으로 나가야 하는 것과, 열심히 일한만큼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로 변했다는 점이지. 그러니까 그 시절을 기억한다는 것은 지난 시절의 회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란다. 이것은 우리만의 몫이 아니라 혜진이와 같은 미래의 세대에게도 남아 있는 과제라는 것이지.

장애나 성별 혹은 가난을 이유로 이웃이나 친구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다짐,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는 자세, 너희 세대들이 그런 것을 갖게 될 때야 말로 비로소 그 어려웠던 긴급조치 시절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보람이 있는 것이란다.

혜진이의 꿈이 꼭 이루어져 우리 나라의 정치가 더욱 더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다시 만날 때는 혜진이가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한번 이야기해보자.

그럼 그때를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45주년 4.19날에 우원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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