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와 왜곡에 대해 나는 강경하다

“불의와 왜곡에 대해 나는 강경하다”
- 1월8일자 중앙일보 ‘강경파 기사’에 대하여


이유야 어쨌든, 과정이야 어쨌든 우리 열린우리당은, 그리고 240시간 연속의원총회를 했던 우리들은 국가보안법을 연내에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1월1일 새벽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2005년을 맞이하여 그래도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2004년을 15일 남겨두고는 우리는 ‘아직도 15일이나 남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고, 10일을 남겨두고는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한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론은 실패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과제는 아직 남아 있지만, 그리고 반드시 폐지를 시키고야 말겠지만, 어쨌든 2004년 연내 폐지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주장한 우리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대체입법으로 죽어가는 국가보안법을 다시 살리려는 의도는 일단 꺾었기 때문에 지금은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국가보안법 폐지, 이것은 역사다. 진실과 거짓은 양적(量的)인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질적(質的)인 판단의 대상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강요하는 국가보안법은 정치적 협상이나 절충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사가 아닌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의 움직임을 보면 신발 끈을 동여매고만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주장했던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의원들을 강경파로 몰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일보는 자유당 정권의 최인규나 박정희 정권의 김형욱과 차지철,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을 강경파의 역사로 분석하고 있다.(중앙일보 1월8일자) 개인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 중앙언론이 군사독재의 주구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획 기사에서 강경과 온건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협상과 타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58년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날치기 파동이나 79년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의원 강제 제명 사건 등도 강경이 권력의 몰락을 재촉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중앙일보에게 온건파란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세력이다. 상대가 아무리 극단적인 독재권력이라해도 대화와 타협의 대상으로 본다면 그들을 온건파라고 한다. 중앙일보는 그래서 72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며 종신집권체제를 구축했을 때, 독재권력과 타협을 주장한 이철승 씨를 온건파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는 사라지고 절충과 타협만이 존재한다. 중앙일보 논리대로 하면 강경파는 이상주의고 온건파는 상대적으로 현실주의다. 단독정권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현실주의며 온건파고 김구 선생은 이상주의자며, 강경파다.

중앙일보에게는 종신집권체제를 구축한 독재권력조차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일 뿐이고 그들과 끝까지 싸우고자 한 이들은 그저 이상만 꿈꾸는 ‘강경파’일 뿐이다.

240시간 연속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우리가 매도될 수는 있어도 분단 반대, 독재에 대한 항거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역사적 대의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불의와 타협하고 협상해야 온건파라면 그런 온건파는 절대 거부한다. 불의에 항거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해 맞서는 일이 강경파라면 그런 강경파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 이는 인권과 자유의 상징이다. 인권과 자유는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여서 계량(計量)하여 이 만큼은 허용되고 저 만큼은 안 된다는 그런 양적인 판단 기준이 아니다. 절대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일이 강경파로 매도되는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슬퍼할 뿐, 그 현실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만약 불의와 왜곡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강경파라고 한다면 나는 강경파다.

그동안 유엔을 비롯하여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국제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말해왔다. 국가보안법의 역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권력이 법률로서 억압해 온 역사 그 자체다. 국가보안법은 과거 우리 역사가 지나 왔던 불의와 왜곡의 현주소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강경파라고 한다면, 국가보안법이 저지른 왜곡된 현대사를 다시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해야 온건파라고 한다면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강경파의 길로 가겠다.

불의와 왜곡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자기 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기와 조건을 고려한 지혜가 필요하다.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비타협적 자세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연성을 전제로 해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만한 시기와 조건을 갖고 있었다. 2004년 3월, 의회 다수 세력은 내용적인 부당성에도 불구하고 우월한 숫자를 믿고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러나 국민은 그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영욕의 2004년에서 오욕은 배제하고 영광만 계승한 2005년의 힘찬 출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2005년에는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는 이제 또다시 더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불의와 왜곡과 맞서 싸우되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시기와 조건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그 길에서 불의와 왜곡에 대한 싸움 자체를 강경파로 매도한다면 나는 여전히 강경파일 수밖에 없다.

아직도 역사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한 가련한 언론을 보는 것은 분노를 넘어 슬픔 그 자체다. 다만 민주적 절차로 합의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당론을 고수하겠다는 이들을 강경파로 매도는 현실의 원인이 이런 몰역사, 몰가치적 사고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이기는 하다.



2004. 1. 10
우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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