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당·정·청 쇄신을 요구했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번 재보선 결과가 주는 의미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탄생한 정당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중산층과 서민에게 그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중산층과 서민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런 판단은 이번 10.26 재선거 결과만을 놓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난 4.30 재보선 결과를 놓고도 이런 판단을 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의 살 길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10.26 재선거 결과를 놓고 유독 당·정·청의 쇄신을 주장하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새 지도부를 구성하고 지금까지 7개월 동안의 경험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2005년을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역시 2004년 12월 국가보안법 폐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올해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나 스스로도 비록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05년에는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10.26 재선거에서 또 졌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일은 열심히 했지만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 것과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당은 일했지만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가받지 못했다.
이것이 내 판단이다. 이 결과에서 참여정부를 구성하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당·정·청 쇄신을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반성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출발에는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사회안전망에 흡수되고 근로조건이나 임금에 차별이 없는 상황을 마련하는 것이 양극화 해소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청와대는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지난 2월에 공개된 대통령 사회정책수석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의 49%에 해당되는 7백만 명에 이르는 임시·일용직 근로자 가운데 75%가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 안전망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과잉 영세자업자 속에서 400만 명에 이르는 영세 자영업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에서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2005년에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문제 상황을 우리는 조금도 개선하지 못했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중산층과 서민이 느낄 수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쇄신의 핵심은 여기 있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를 위한 노력이 중산층과 서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또 우리당이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당·정·청인가

그 출발로 당의 쇄신을 요구했다. 당에선 7, 8월 여름 휴가를 반납하며 ‘민생 속으로'라는 구호 아래 현장 활동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연정이 발표되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당의 면책 사유는 아니다. 연정 제안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은 흔들리지 말고 계속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열린우리당은 국민이 생각하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에서 세 번째 순위로 밀려나 있다. 부자를 위한 감세를 주장하는 한나라당보다 뒤쳐져 있다. 이런데도 당이 쇄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책임 있는 정당이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비정규직 보호 입법은 국회가 통과시키지 못했고, 정부가 내 놓은 영세자영업자 대책은 그 폭넓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진입장벽’ 강화로만 보도했다. 그렇다고 정부 역시 면책되지는 못한다.

재경부는 당정 위크샵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 환경 규제를 완화하고 골프장과 대규모 유통점포 신설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이런 내용이 버젓이 양극화 대책의 주요 항목으로 나와 있는 한, 영세자영업자에 경영 컨설팅이나 세무관련 지원 등 아무리 좋은 말을 나열하더라도 정책의 방향이나 일관성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감사원은 사회보장 보험의 하나인 고용보험기금 적립이 과다한 것을 이유로 보험요율을 낮추라고 하거나 철저히 사용자의 시각으로 사회기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고용을 유지하거나 고령자 등을 채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업주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거나, ‘기업에서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기피하기 때문에 기업이 스스로 위 사업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과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그도 모자라 사실 관계가 잘못된 감사 자료를 버젓이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통계청은 여성 근로자의 근로시간이나 임금에 대한 엉뚱한 통계를 내놓았다는 문제를 지적하자 아예 삭제해버렸다.
노동부는 04년도 자신들이 집행한 청년실업대책 예산을 아예 3가지 버전으로 내놓고 있다. 각각의 버전은 수백억 원 이상의 차이가 나며, 전혀 엉뚱한 사업을 청년실업대책 예산으로 집계하기도 하고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편성만 바꿔서 청년실업대책의 신규 사업으로 내놓고 있다.


이렇듯 이미 정부 부처에서 경제사회적 양극화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문제 인식 수준이 들어난 상태에서 최근 노동부의 비정규직 근로자 통계 오류 사건은 단순히 우연적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사건이다.

이뿐인가?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식품안전에 문제가 불거졌지만, 8개 부처로 나눠져 있는 식품관리 업무를 총괄할 수 있는 강력한 기구 하나를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 식육가공식품의 예를 든다면 식육함유량이 50% 이상이면 농림부 소관이고 50% 이하면 식약청이 담당하고 있는 상태다. 정부에서 기껏 만든 대책은 총리실 산하에 ‘식품안정정책위원회’를 신설하여 부처간의 업무 조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에 머물렀다.

물관리 일원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교통부(광역상수도)와 환경부(지방상수도)가 나눠 맡고 있는 수질, 요금, 상수원 개발 문제 역시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광역·지방상수도 관리 분담에 따른 중복투자로 재정손실만도 4조원에 이른다. 물 관리 일원화를 가로막는 부처 이기주의나 각종 인·허가권에 얽힌 담당 부처 공무원의 이해득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상수도 관리 일원화 결정을 미룬 채 정부 신설한 물관리위원회는 각 부처를 실질적으로 통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래서 정부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청와대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에서 민생 속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 연정을 제기하여 당의 무게중심을 흔들었던 그런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지적한 정부 각 부처의 문제,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참여 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의지를 일선 부처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차원이다.

참여정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의지가 정부 각 부처에서는 오히려 왜곡되어 나타나는 상황에서 청와대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10. 26 재보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보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나타난 10.26 재보선 결과에 따라 청와대의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편협한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구는 말한다.
“지지율 20%대의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은 쉬운 일이고 대통령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됐다.”고.


그러나 정말 용기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자신이 선택하고 참여한 정부의 잘못조차 지적할 수 있는데 있다. 이를 지지율 수치의 차원으로 슬쩍 왜곡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의 뜻에 귀를 막고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성공을 저해하는 짓이다. 내부의 비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기회주의적인 문제제기’ 정도로만 인식하는 한, 국민과 참여정부 사이의 틈새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한 틈새를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이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이 속에서 나만이 ‘무오류(無誤謬)’하다는 것은 ‘편협한 오만’이다.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의 시도 때도 없는 얼토당토 않는 비난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잘못된 비난에 대응하는 것과 그 같은 허무맹랑한 비난이 가능한 상황, 또 그런 비난이 여전히 국민을 움직이고 있다는 상황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국민에게 다가서지 못한 사이에 국민과 참여정부 사이에 틈새가 이만큼 벌어져 있다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비대위는 쇄신을 위한 비대위여야 한다.
당·정·청 모두 쇄신하자.


현재 당에서 논의되는 비대위는 그 쇄신의 출발이어야 한다. 관리를 위한 비대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쇄신은 바로 정기국회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기국회의 역할과 당 쇄신은 둘이 아니다. 하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국민이 떠난 뒷자리에서 다시 국민을 불러오는 장을 펼칠 수 없다.

이제 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면서 법과 제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청와대는 더욱 귀를 넓혀서 국민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이 각 부처의 일선에까지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점검하여 우리 사회가 선진 복지국가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에게 호소할 것은 호소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비판을 감수하여 개선하면서 진정 참여정부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부라는 점을 국민이 인식하도록 하자.

우리가 주장하는 쇄신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2005. 10. 30
우원식

댓글

Designed by CMSFactory, Modified by Wonwoo Kim